권오용(56) SK㈜ 사장(PR Adviser)은 늘 새로운 둥지를 찾아 떠날 준비를 한다. 부하직원들이 "회사를 위해 무엇을 할까요"하고 물으면 서슴없이 "떠날 준비를 하라"는 조언을 하곤 한다. 권 사장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회사는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사람이 죽어도 떠나지 않는 직장이기 때문이다.
첫 직장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서 기획홍보본부장(상무보)에 오르기까지 20년간 근무한 후 금호아시아나그룹(상무)과 벤처투자회사였던 KTB네트워크(상무)를 거쳐 현재의 SK그룹으로 옮겨 전무와 부사장으로 승진을 거듭한 끝에 올 1월 샐러리맨의 꿈인 사장자리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SK에 와서 그랬던 것처럼 그는 늘 위기에 처한 조직을 구하는 구원투수로 등판, 승승장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 전경련에 있을 때 IMF사태를 맞아 대기업들간의 빅딜을 피할 수 없게 되자 '대국민 커뮤니케이션'을 성공적으로 이뤄냈고 자리를 옮긴 KTB에서도 주가조작 의혹사건을 깔끔하게 처리해냈다. 노무현 정부 때 급성장한 금호그룹에 가서는 국민기업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고 SK로 옮긴 2004년 SK와 소버린 간의 경영권 다툼때 여론을 움직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행복'을 SK의 브랜드 이미지와 접목시킨 것도 그의 작품이다.
SK로 자리를 옮기자 한 그룹 임원이 그에게 "직장을 옮긴다는 것은 마누라를 바꾸는 만큼 스트레스를 받는 일인데…."라며 잦은 이직경력을 문제 삼았던 적이 있다. 그에게 왜 이직에 대한 고민이 없었을까…. 권 사장은 "스트레스를 일상으로 받아들이면 즐겁다"는 한마디 말로 대꾸했다.
끊임없이 자기역량을 개발하고 회사가 그런 인재를 알아본다면 개인과 회사 모두 발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개인과 회사 모두 현실에 안주하거나 변화를 거부한다면 더 이상 서로가 필요없게 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무엇보다 SK의 경영철학이 리더는 ▷회사에 봉사하고 떠나는 것과 ▷자신보다 더 나은 리더를 양성, 회사에 되돌려주는 역할이기 때문에 다행히도 권 사장의 가치관과 다르지 않다.
권 사장은 리더가 갖출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소통'을 꼽았다. 그는 "전쟁터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는데 설득할 수는 없지 않느냐"면서 "미 육군사관학교에서 지휘관의 덕목으로 가장 중시하는 것이 소통"이라고 소개했다. 전쟁이든 경영이든 간에 평소에 소통이 돼있어야 하는데 소통 외의 다른 능력은 재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2009년 대한민국 PR 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자타가 공인하는 '홍보전문가'로 불리고 평가받고 있는 것에 대해 섭섭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홍보를 잘한다는 것은 다른 리더들보다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더 많이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전경련에 있을 때부터 '사람은 기업을 만들고 기업은 세계를 만든다'(1995)와 '제5의 경영자원'(1997), '한국병 -진단과 처방'(2001) 등의 책을 출판, 기업가의 자질과 자세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파하고 있다.
소통과 더불어 그는 '공동체 의식'도 강조한다. "어릴 때는 국가와 사회에 대해 지나치게 강요를 받았는데 요즘은 너무 가족만 움켜쥐고 있는 것 같은데 국가와 사회에 대한 공동체 의식을 넓혀야 하고 무엇보다 사회지도층이 솔선수범해야 한다."
지난해 그가 두 딸에게 보낸 편지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는 이 편지에서 벨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를 탄생시킨 실리콘 밸리가 승자의 요람이 아니라 패자의 무덤이라며 노력은 실패와 같이 온다고 지적하면서 그럼에도 그곳이 아름다운 이유는 패자의 긍정으로 미래를 그리고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썼다. 그리고는 "현실의 세계에서 1+1=2고, 10-1=9가 되지만 1+1=11이요 10-1=0이 될 수도 있다고 믿고 있다." 그것이 공동체의 힘이자 스스로 겸손하고 서로에게 배려하는 공동체의 모습"이라며 공동체에 대한 깊은 신뢰를 표시하기도 했다.
권 사장은 창업이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라면서 기업가가 우리 경제의 미래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기업가의 '롤모델'을 많이 만들어 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존경하는 기업인을 꼽으라면 고 이병철 삼성회장과 고 정주영 현대그룹회장 정도밖에 없는데 아직도 우리는 100년 전에 태어난 인물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워런 버핏과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등이 있는데…."
그가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는 원천은 전경련에 다니던 시절, 전경련 회장을 지낸 고 정주영 회장과 고 최종현 SK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등을 직접 모시고 일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고향 영주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곧바로 상경, 서울 사대부중과 사대부고, 고려대학교 정외과를 졸업했다. 고향을 떠난 지가 40년이 넘었지만 고향을 떠올리는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