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러운 푼돈' 1000원의 행복… 따뜻한 사랑 모이면 '기적의 큰돈'

제3세계 아이들 20명이 한끼 해결

대구 수성고등학교 2학년 8반 학생들은 한 달에 1천원씩 성금을 모아 에티오피아에 있는 5살 어린 동생을 후원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대구 수성고등학교 2학년 8반 학생들은 한 달에 1천원씩 성금을 모아 에티오피아에 있는 5살 어린 동생을 후원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푼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희망'이 되는 돈이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대구 운불련 택시에는 껌을 구매하면서 성의껏 성금을 내는 모금함이 설치돼 있다. 승객들은 껌 한 통에 몇 백원에서 1천원 정도의 적은 금액을 내지만 이것이 모여 연간 2천만원이 넘는 성금이 돼 이웃에게 따뜻함을 전하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대구 운불련 택시에는 껌을 구매하면서 성의껏 성금을 내는 모금함이 설치돼 있다. 승객들은 껌 한 통에 몇 백원에서 1천원 정도의 적은 금액을 내지만 이것이 모여 연간 2천만원이 넘는 성금이 돼 이웃에게 따뜻함을 전하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요즘 세상에 1천원은 참 적은 돈입니다. 화폐가치의 인플레이션이 워낙 가파르게 진행되다 보니 '지폐'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푼돈' 취급을 받는 설움도 가지고 있습니다. 천원짜리 한 장 달랑 들고 집을 나섰다간 시내버스 한 번도 타지 못합니다. 카드를 사용하면 950원이지만, 현금을 내려면 1천100원을 내야 하기 때문이죠. 슈퍼마켓에 가서는 1천500원짜리 아이스크림콘 하나도 사먹지 못합니다. 고작해야 껌 한 통, 작은 과자 한 봉지 집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천원이 어떻게 쓰이는가에 따라 그 가치는 수십 배, 수백 배의 가치를 발휘하기도 합니다. 세계 빈곤퇴치를 위한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는 활동가들은 "1천원은 절대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바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지구촌 이웃 20명의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돈이기 때문입니다.

풍요로움이 차고 넘치는 21세기. 그러나 제3세계에서는 하루에 4만여 명이 굶주려 죽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2만6천 명이 다섯 살이 채 안 된 어린이들이고요, 숨이 넘어가는 아이가 800원짜리 링거 한 병이면 생명을 되찾을 수 있지만 약품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천원 때문에, 단돈 천원이 없어서 어린 생명들이 매시간에 1천200명씩 죽어나가고 있는 것이 우리 사는 세상의 또 다른 이면입니다.

그래도 세상은 아직 따뜻합니다. 티없이 조용하게 단돈 천원으로 나눌 수 있는 행복, '천원의 기적'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도 꽤 많기 때문입니다. 커피 마시고 싶은 욕구를 한 번만 참으면, 오늘 점심 한 끼를 1천원 싼 메뉴를 선택한다면, 어렵지 않게 1천원의 나눔은 실천할 수 있습니다. '티클 모아 태산'이라고 적은 돈이지만 서로가 힘을 합치면 분명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내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멋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 무한한 금액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지금 이순간, 1천원의 행복을 만들어보시지 않으실래요?

◆여고생 "에티오피아 아이 도와요"…1학급 1아동 결연운동

대구 수성고 2학년 8반 학생들은 '어린 동생'을 한 명 보살피고 있습니다. 아비네트(5·에티오피아)에게는 2학년 8반 학생 모두가 누나가 됩니다. 김혜인(18) 양은 "아직 학교에 다니지 않는 어린 친구고, 축구를 좋아한다"고 소개했습니다.

현재 수성고 36개 학급 중 35개 학급에서는 1학급 1아동 결연을 하고 있습니다. 멀리 시에라리온, 케냐, 에티오피아에 예닐곱살 남짓한 어린 동생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만나본 적은 없지만 사진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각별한 애정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매달 기부하는 금액은 1천원 남짓. 한 달 기부금 3만원은 혼자 내기에는 조금 벅차지만, 한 학급 학생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다면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금액이기 때문입니다. 전교학생회장을 맡고 있는 정효영(19) 양은 "각 반마다 운영방식이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 반의 경우에는 매달 1천원씩을 걷어서 3만원은 기부하고 나머지 돈은 학급회비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수성고에서 결연운동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입니다. 이웃돕기에 각별히 관심이 많은 한 선생님의 제안으로 지난해 3개 학급에서 해외 아동과 결연을 했습니다. 그리고 소문이 퍼지면서 올해는 거의 모든 학급에서 동참하게 된 겁니다.

해외 아동 결연은 순전히 학생들의 의지였습니다. 효영 양은 "월드비전에서 보내온 홍보 동영상을 방송을 통해 전교생에게 홍보한 뒤 학급회의를 통해 결연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고 밝혔습니다.

함께 인연을 맺은 모두의 동생이 있다 보니 반 친구들 사이에 우애도 각별해지는 계기가 된다고 합니다. 효영 양은 "조금 있으면 쿰바에스엠(8·시에라리온)의 생일이어서 반 친구들이 모두 사진과 편지를 써 동생에게 보내주기로 했다"며 "휴대전화 배경화면으로 쿰바의 사진을 넣어다니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수성고 강인규 교감은 "학교의 교훈이 '꿈·도전·봉사'인 만큼 이 결연활동이 수성고의 전통으로 길이길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습니다.

◆운불련 "껌 한 통의 사랑 나눠요"…껌 한 통의 사랑

대구에서 개인택시조합으로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운불련(운전기사불자연합회) 택시에는 늘 껌 판매통이 비치돼 있습니다. 회원 규정을 통해 의무적으로 비치하도록 한 이것은 300원짜리 껌 한통 가져가는 대신 원하는 만큼의 성금을 넣도록 만들어진 모금함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몇 백원에서 1천원의 돈을 모금함에 넣습니다. 택시기사의 친절에 고맙다며 지폐를 넣어주는 노신사도 있고, 껌 사달라고 떼쓰는 아이의 투정에 못 이겨 잔돈을 넣는 아이엄마도 있습니다.

이렇게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모이면 큰 위력을 발휘합니다. 1천 명에 달하는 대구 운불련 소속 개인택시 운전기사들은 지난해에만 모두 2천75만원의 성금을 모아 각 학교와 아동복지시설, 홀트아동복지회 등에 전달했습니다. 모금 내역과 사용처는 택시 안에 비치된 안내문을 통해 승객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대구 운불련 김주본(63) 회장은 "투명하게 운영되기 때문에 승객들이 서스럼없이 잔돈을 꺼내놓을 수 있도록 했다는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고 했습니다.

매년 대구 운불련에서는 모금 실적이 좋은 상위 10명에게 표창을 하면서 모금 활동을 독려하기도 합니다. 지난해의 경우 1위를 차지한 운전기사는 60만원이 넘는 성금을 내놨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승객들의 모금만으로는 만들어지기 어려운 실적입니다. 김 회장은 "운행을 해 보면 어떤 때는 사나흘 동안 단 한 명도 모금해주지 않을 때도 꽤 된다"며 "이럴 때는 운전기사가 사비를 털어 하루 1천원씩 모금함에 넣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그 역시도 종종 주머니를 털어 성금함을 채웁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요즘은 껌 판매를 계속해야 할는지 고민이 크다고 합니다. 껌 한 통의 가격이 워낙 비싸다 보니 수익이 별로 남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김 회장은 "껌 한 통이 300원이지만 성금은 얼마를 내야 한다고 정해진 것 없이 승객 마음이기 때문에 수익률이 낮다는 문제가 있다"며 "일부에서는 아이를 데리고 타는 부모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분들도 있어서 다른 방식으로 변화를 모색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성금 모금 자체를 폐지할 생각은 없습니다. 불교를 믿는 신자들의 모임인 만큼 '자비'와 '보시'를 실천한다는 기본 원칙만은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김 회장은 "원가는 낮추면서 좋은 뜻을 서로가 나눌 수 있는 더 나은 대안에 대해 고민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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