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규리의 시와 함께] 늦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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牧丹이 시들도록 젖은 빨래는 마르지 않네

흐드러진 牧丹,

부풀어 오른 외음부 한껏 열어젖혀진 꽃잎 속

노란 꽃술 다발에 벌들이 어질머리 처박고선

젖은 빨래 다 마르도록 나오질 않네

수직으로 치켜든 꽁무니,

쉴 새 없이 날개 버둥거리는 저 벌들,

붉은 해 등에다 지고 온몸 붉게붉게 젖어드네

더러는 검게 타버린 혓바닥

다 타고도 남는 허전함이 더 붉게붉게 타들어가네

牧丹은 시들고

젖은 빨래는 아직 마르지 않네

빨래집게에 혀 빼 물린 채

시들어빠진 해 그림자 다 마르도록 젖어 있네

임경림

대구수목원에서 처연하게 핀 모란을 보았어요. 모란이거나 목단이라 하면 큰언니가 떠올라요. 시집간 이후 한 번도 웃지 않는 언니. 그 언니 친정 오면 이불 빨래부터 해치웠어요. 무겁고 힘든 빨래를 하면서 자신의 고난을 이야기 않고 꿀꺽 삼키는 거였나 봐요.

꽃 이파리가 크고 붉은 목단은 예쁘지도 달콤하지도 않고 그저 수심 많은 여자를 닮았거늘 나른한 초여름 밤에 홀로 분만하는 여자처럼 저절로 피고 졌지요. 시부적시부적 시들어 가는 목단과 해 지도록 마르지 않는 빨래의 비유는 처절하게 아름다운데요.

늦봄, 저 홀로 시들어가는 꽃이 아름다운건, 제 운명을 스스로 감당하는 자세가 결연한 때문이죠. 아무것도 아닌 삶이 눈물겨운 건 주목받지 못한 인생을 묵묵히 걸어온 인내 때문이죠. 뭐니 뭐니 해도 그 꽃들, 우리 삶이 피워낸 시공이죠, 만개한 고통이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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