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수업 중에 원자력발전소(원전) 사고와 핵무기 폭발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위험할까라고 물었다. 중국 유학생 한 명이 원전 사고라고 했다. 핵무기 폭발은 시간적 지역적으로 한정되나, 원전 사고는 지속적이며 광범위하기 때문이란다.
핵무기(nuclear weapon)와 원자력발전소(nuclear power plant)는 핵분열(nuclear fission)을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원전은 핵발전소의 다른 이름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를 굳이 원전이라 한다. 1970년대 후반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핵무기 개발로 미국과 끊임없이 마찰을 빚었다. 그 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미국의 압력으로 국내 핵기술 개발은 중단되고, 핵이라는 단어도 금기시됐다고 한다. 한국핵연료㈜는 한국원자력연료㈜로, 한국핵연료개발공단과 한국원자력연구소는 한국에너지연구소로 이름이 바뀌었다. 심지어 병원에서 촬영하는 MRI를 일본이나 영어권에서는 핵자기공명영상(Nuclear Magnetic Resonance Imaging)이라 하나, 우리는 자기공명영상이라 부른다. 경주의 방사능 폐기물 처리장(방폐장)의 공식 명칭도 월성원자력환경관리센터다.
핵은 무서운 이미지를 주나, 원자력은 다소 부드러운 느낌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핵은 무기, 원자력은 발전소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 같다. 청정에너지라는 설명까지 덧붙이면 원전은 안전한 최첨단 발전소라는 느낌마저 든다. 그런데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인한 방사능 유출로 이러한 이미지가 깨지고 있다. 핵무기와 마찬가지로, 원전도 사고가 나면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능이 유출된다는 사실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방사능은 볼 수도 느낄 수도 없기 때문에 더욱 공포스럽다. 계측기의 도움을 받아야 방사능의 접근을 알 수 있으나, 계측기가 위험을 알리는 순간 우리 몸은 피폭되어 버린다.
원전이나 핵무기나 '사고'가 나면 별 차이가 없다. 1986년 4월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4천여 명이 사망했다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밝혔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피폭으로 암에 걸린 이들까지 포함하면 약 6만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2차대전 말 히로시마의 원폭 투하로 약 6만 6천 명이 사망했다. 역설적이지만, 평화를 파괴하는 원폭은 히로시마 이후 한 번도 사고가 없었으나, 평화를 위한 원전은 최근 50년 사이에 세 번이나 사고를 일으켜 인류를 위협했다.
한반도는 핵으로 싸여 있다. 북한에는 핵무기가 있고 원전은 없다. 남한에는 원전은 있고 핵무기는 없다. 북한의 핵은 직접 우리 생명을 겨냥하고 있으나, 그들은 체제 방어용이라 한다. 남한의 원전은 절대 안전하며 효율 좋은 전기를 공급해준다고 한다. 남북한의 핵이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체제가 위협을 받으면 북한은 핵무기를 사용할지 모른다. 한국의 원전도 절대 안전의 신화가 무너질 수 있다. 사고가 났을 때, 원전이나 핵무기는 다 같이 한반도에 엄청난 재앙을 부른다. 그런데 우리는 북한 핵에는 민감하나, 남한의 핵발전소에는 둔감하다.
최근 정부는 원전은 "한반도에서 예상되는 최대 규모의 지진과 해일"에도 안전하다고 광고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원전의 노심(爐心)이 손상되는 사고 확률이 1만 년당 1회 이하가 되도록 설계하라고 권고한다. 하지만 사고는 인간이 예견치 못하는 곳에서 발생한다. 과학자들이 핵분열을 발견했을 때 세슘, 플루토늄 등 지구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방사능 물질이 발생하여 인류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줄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한 것과 같다. 또 방사능의 반감기를 고려하면 원전사고의 영향은 1만 년 이상 갈 수도 있다.
북한의 핵이 없어져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북한 핵에 견줄 일은 아니나, 남한의 원전이 절대 안전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있다. 한국처럼 좁고 인구 밀집도가 높은 곳에서의 원전 사고는 치명적이다. 원전, 핵발전소 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해야 할 때이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약 100㎞ 떨어진 센다이에 살고 있는 지인이 말했다. "원전 없이 계획 정전을 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이번에 실감했다"고.
이성환(계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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