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1년생 A군은 에듀팟(edupot.go.kr) 때문에 고민이다. 토론 동아리 활동과 복지관 방문 봉사활동 등 서너 가지 활동 내용을 기록하긴 했으나 입학사정관들이 입시 때 학생 평가 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라는 얘기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사례가 더 많아야 하는 건 아닌지 자꾸 걱정돼요. 하지만 에듀팟에 기록할 것들을 늘리려고 교과 공부 외 활동을 많이 하기도 힘들어요. 자칫 성적이 떨어지면 어쩌죠? 얼마나 많이, 어떻게 기록해야 할지 감이 잘 안 잡힙니다."
3월 본격 가동된 에듀팟이 중'고교생과 학부모들을 고민에 빠뜨리고 있다. 창의력과 인성'진로 교육에 바탕을 둬 학교 교육 정상화에 부합하는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학생, 학부모에겐 입시 준비 부담이 더 커졌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새 제도 도입으로 어느 정도 혼란은 피하기 어렵지만 이미 교육 현장에선 적극적인 수용 움직임도 조금씩 감지되고 있다. 에듀팟에 활동 내용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학생들의 사례와 에듀팟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는 교사들의 조언을 들어봤다.
◆에듀팟, 우린 이렇게 씁니다
"처음엔 조금 당황했지만 하나하나 적다 보니 재미가 생겨요. 나중에 읽어보면 당시에 무엇을 했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도 알 수 있어 좋아요. 글 쓰는 걸 좋아하다 보니 더 재미있어요."
대구시교육청이 지정한 창의적 체험활동 시범학교인 대진중학교 박수빈(1년) 양은 에듀팟에 창의적 체험활동을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수빈이는 최근 진로활동 영역에 '꿈모아 UCC 만들기' 활동을 풀어썼다. 이는 대진중이 1학년을 대상으로 학급별로 성격'심리 테스트인 MBTI(The Myers-Briggs Type Indicator) 검사 후 UCC로 학생들의 꿈을 표현해 보도록 한 것. 축구 선수 박지성의 몸에 자기 얼굴을 붙이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영상으로 만들어졌다.
"학급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 스토리를 의논하고 계획하면서 함께 편집까지 했어요. 서로 꿈을 얘기하면서 더욱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결과물을 보니 말할 수 없을 만큼 뿌듯했어요."
같은 학교 정지수(1년) 양은 자율활동 영역에 지난달 다녀온 우포늪 체험을 담았다. "생태해설사 선생님의 해설로 우포늪이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늪이며 람사르 협약에 의해 세계인이 지켜야 할 곳임을 알게 됐다"고 적었다. 느낀 점도 충실히 기록했다. "멸종 위기에 처한 따오기 얘기를 들은 뒤 주변에 멸종 동물을 소개하고 서명 운동을 하는 등 작은 일부터 조금씩 실천해야겠다"고 쓴 것.
수성고 학생들도 에듀팟 활용에 적극적이다. 2009 개편 교육과정에 따라 현 중 1, 고 1년부터 창의적 체험활동 교육과정을 이수 중이지만 고교 2, 3학년 학생들도 입학사정관제 등에 대비해 그동안 해온 현장 체험, 동아리와 봉사 활동 등을 에듀팟에 녹여내고 있다. 올해 경희대가 교과 성적을 보지 않는 대신 창의적 체험활동 기록만으로 선발하는 전형을 도입기로 한데다 다른 대학들 역시 입시에서 에듀팟 활용을 적극 검토 중이기 때문이다.
김호정(3년) 양은 지난해 참여했던 환경생태탐구반 동아리 활동을 에듀팟에 올렸다. 영천시 임고면의 자연 하천을 찾아 생물도감을 뒤적이면서 피라미와 갈겨니, 몰개와 참몰개를 구분하느라 애를 쓰던 모습을 담아냈다. "수험생이다 보니 따로 활동을 할 여력은 안 돼요. 대신 자기소개서를 쓰고 틈틈이 1, 2학년 때 했던 활동 중 골라 에듀팟에 올리고 있어요. 좋은 추억으로 오래 남을 것 같은데 입시에도 도움이 되면 더 좋죠."
기억에 남는 것으로 봉사활동을 꼽은 이예솔(2년) 양. 중학교 3년 때부터 매년 '길거리 발명축제'(대구시교육청 주최) 현장에서 했던 봉사활동을 에듀팟에 적었다. 축제에 참가한 꼬마들이 발명품을 만드는 걸 돕고 과학 원리도 설명해준 것. "번거롭긴 한데 에듀팟에 하나하나 적다 보면 생각이 정리가 돼요. 쌓여가는 기록을 보면 즐겁기도 하고요."
올 3월 현대 청운고에서 전학온 이승은(2년) 양도 봉사활동 기록이 눈에 띄는 경우다. 지난해 학교에서 PTP(Peer Tutoring Program)에 참가했던 경험을 에듀팟에 기록했다. 이는 친구들이나 선후배 등 학생들끼리 계획을 짜 함께 공부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영어를 좋아하는 이 양은 영어 PTP 강좌를 만들고 직접 강의를 하면서 질문을 받고 당황했던 일, 강의 준비를 위한 노력까지 구체적으로 적었다.
◆에듀팟, 즐긴다는 마음으로 기록
이번 학기부터 에듀팟이 본격 도입된 탓에 아직 학생들에겐 낯설 수 있다. 학부모들도 마찬가지. 중 3 아들을 둔 이연주(43'여) 씨는 에듀팟 얘기만 나오면 부담스럽다. 어떻게 쓰라고 아들에게 말해줄지 막막한데다 자신이 꼼꼼히 챙겨주다 보면 결국 부모 숙제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에듀팟 기록을 관리해준다는 학원에라도 보내야 하는 건 아닐까요? 입시 제도는 수시로 변하는데 입시와 연계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 무겁네요."
사교육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에듀팟을 제대로 활용하기 힘든 것일까? 학교와 교사의 노력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학교 울타리 안에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창의적 체험활동과 이를 기록하는 에듀팟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 대진중과 수성고가 그 사례다.
대진중은 매주 주말을 에듀팟 쓰는 날로 정해 학생들이 에듀팟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 담임교사가 적어도 2, 3주에 한 번씩 학급 학생들이 올려둔 에듀팟 기록을 확인하고 있다.
에듀팟에 올릴 재료인 창의적 체험활동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구성하려고 노력 중이다. 교외 체험에 나설 때는 학생들이 '자율진로활동 스토리북'을 들고 가도록 한다. 이 소책자는 체험 때마다 교사들이 만드는 것으로 체험 장소와 눈여겨볼 것 등에 대한 사전 정보를 담을 뿐 아니라 학생들이 활동 내용과 감상까지 적을 수 있도록 꾸몄다. 체험 틈틈이 이 책에 메모를 해두면 에듀팟에 기록할 때 편리하게 참조할 수 있다.
대진중 김기선 교사는 창의적 체험활동의 어느 영역이든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자세가 돼야 에듀팟에 적을 내용도 풍부해진다고 강조했다. 김 교사는 "에듀팟에 기록을 남길 때는 일기처럼 그때그때 미루지 말고 적어야 나중에 부담이 되지 않는다"며 "어떤 활동을 했는지 단순 나열할 게 아니라 그 활동을 통해 무엇을 느끼고 배우게 됐는지 구체적으로 쓰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수성고는 에듀팟 기록을 꼼꼼히 살펴보는 한편 이과 계통 진학을 꿈꾸는 학생이라도 인문학 소양을 쌓게 하는 등 폭넓은 체험을 권장한다. 또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에듀팟 연수 때는 제도 도입 취지만 알렸고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는 학생들에게만 가르쳤다. 학부모가 지나치게 관여하게 되면 자녀의 잠재력을 키우고 스스로 진로를 찾아가는 데 보탬이 되지 않는데다 대입 전형 과정에서 학생이 직접 쓰지 않은 글로 판단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곳 백점순 교사는 "입시만 염두에 두다 보면 에듀팟을 관리하는 게 짐처럼 느껴진다"며 "컴퓨터를 갖고 노는 데 익숙한 세대인 만큼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와 비슷하니 가까이 두고 즐긴다는 생각을 가지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전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에듀팟은? 학생이 자기 주도적으로 학교 내'외의 다양한 창의적 체험활동을 기록'관리하는 온라인 시스템이다. 창의적 체험활동 교육과정의 4가지 영역인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 중심의 활동 내용과 자기소개서, 방과후학교활동 등을 포함하는 교과 외 활동에 학생이 얼마나, 어떻게 참여했는지 보여주는 공간이다. 학생이 스스로 작성하고, 교사가 학생 기록 내용을 확인'승인'보완하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10개의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관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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