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니하오 통신] (39) 야오밍(姚明)

# "인간적 매력으로 미·중 가교 역할"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 야오밍(姚明'32)이 지난달 20일 은퇴했다.

'경기당 평균 득점 19점, 리바운드 9.2개, 슛 블로킹 1.9개.'

야오밍이 NBA에서 거둔 개인 통산 성적이다. 농구 선수가 은퇴하면 그의 존재는 남겨진 기록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야오밍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야오밍은 선수로서의 뛰어난 기록뿐 아니라 그보다 훨씬 의미있는 문화적 유산을 미'중 양국에 남겼다.

1980년 생의 야오밍은 태어날 때부터 운명적으로 농구선수였다. 16세 때 상하이 팀 대표로 뛰었으며 18세 때 중국 국가대표가 됐다. 그는 중국 농구대표로 3차례 올림픽에 참가했으며 두 차례나 8강으로 이끌었다. 2002년, 마침내 야오밍은 NBA에 입성했다. 미국에서 농구를 한 적이 없는 선수로는 처음으로 NBA 드래프트 전체 1번을 차지했다. 그는 9년간의 NBA 활약 중 486게임을 뛰며 휴스턴 로키츠의 22연승을 이끌었고 8차례나 NBA의 올스타에 선정됐다.

하지만 그는 경기장 내에서 거둔 뛰어난 성적보다 경기장 바깥의 영향력이 더 컸다. 2m26의 야오밍은 '걸어 다니는 만리장성'이라는 별칭과 함께 미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중국인 중의 한 명이 됐다. 9년 전 야오밍이 미국에 왔을 당시, 중국은 스스로 비약하는 나라로 여겼지만 세계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야오밍의 등장으로 세계는 중국을 더 이상 낯선 국가로 여기지 않게 됐다. 그가 중국을 세계에 알리는 창구 역할을 한 것이다.

야오밍은 부지런하고 자신감이 있었으며 겸손과 유머, 관용의 미덕까지 갖췄다. 동양인 특유의 매력과 함께 큰 키는 사람들 가슴 속에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야오밍은 가는 곳마다 취재의 대상이 되었으며 민감한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총명함과 지혜로 받아넘겨 주위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사했다.

진찬롱(金燦榮·중국 인민대학 국제대학원 부원장)은 "미국인들은 동양인을 교육에만 집착하고 남들 앞에 잘 나서지 않는 존재로만 인식했었다"면서 "하지만 투철한 직업정신뿐 아니라 정직하고 유머스런 야오밍 덕분에 중국인은 인간적이지 못하다고 여기는 미국인들의 고정관념을 깼다"고 말했다.

미국인들은 야오밍이 즐겨 먹는 음식을 통해 중국의 요리 문화를 배웠고 그의 언행을 보며 중국 사회와 역사를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야오밍은 주미 대사 10명과 맞먹는다"고 보도할 정도로 야오밍의 '민간 외교' 효과는 컸다.

또한 그가 NBA에서 뛰는 동안 주말 평균 3천만 명의 중국인 시청자를 확보했으며 전성기 때는 1억 명의 중국인이 그의 경기를 지켜봤다. 미국인뿐만 아니라 농구에 광적으로 열광하는 중국인들 역시 농구경기를 통해 전해지는 미국의 문화와 친숙해졌다. 야오밍으로 인해 미·중 간의 문화적 이질감이 급속도로 좁혀지는 계기가 된 셈이다.

중국인들은 야오밍을 성공한 운동선수로만이 아닌 투철한 직업정신과 밝고 선량한 성격, 애국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영원히 기억하고 있다.

전수영기자 poi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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