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늦었지만 80대 나이에 대학에 합격해 꿈만 같습니다. 공부를 계속해 파란만장했던 내 삶을 소설로 남겨보는 게 꿈입니다."
사회복지법인 미망인모자복지회 안목단(80) 대표가 역대 최고령으로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만학도 수시 전형에 합격해 화제다. 안 대표는 "합격이 믿기지 않지만 무엇보다 배우지 못한 천추의 한을 풀 수 있게 되어 기쁘다"며 "손주 같은 젊은 학생들과 함께 대학 공부를 한다는 생각에 벌써 마음이 설렌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제가 수시전형에 지원서를 내니까 고령의 나이에 학교를 다닐 수 있는지 여부를 사전에 알아보기 위해 대학 측 관계자가 제 사무실로 찾아왔어요. 대학 관계자는 저를 대면하면서 두 번 놀랐다고 하데요. 처음엔 카랑카랑한 전화 목소리에 놀랐고, 또 한 번은 얼마나 건강한지 80대 노인 같지 않아서 놀랐다고 하지 않겠어요."
안 대표는 지난달 초 마음이 울적해 경주 감포 바다에 가는 도중에 지인으로부터 합격사실을 들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돌아와 진짜 합격했다는 사실을 접하고는 눈물을 펑펑 흘렸다고 했다.
안 대표는 "미망인으로 살아온 파란만장한 일생을 소설로 쓰기 위해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다"며 "이런 소설을 후대에 남겨 홀로 사는 사람이나 청소년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고 했다.
안 대표는 내년 3월 대학에 입학해 4년을 공부한 뒤에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대학원에 진학해 박사학위 취득에도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안 대표는 현재 대구 화원 천내리에 있는 만학도가 공부할 수 있는 한남중·미용정보고등학교 졸업반이다. 한남중·미용정보고 윤근수 교장은 "안 대표는 출장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결석하지 않을 만큼 학업에 대한 열정이 놀랍다"며 "부진한 과목은 집에서 밤을 새워서라도 공부하고 성적도 줄곧 상위권에 들었다"고 전했다.
"중·고등 4년 동안 국어와 한문이 가장 쉽고 재미있었죠. 이번 기말고사에서 국어는 100점을 못받은 게 아쉬워요. 수학은 너무 어려웠어요."
안 대표는 유년 시절을 너무나 힘겹게 보냈다. 포항시 효자동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난 안 대표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와 단둘이 외로이 생활했다. 1950년 초 연일초등학교에서 공부를 잘해 월반으로 4년 만에 졸업한 안 대표는 동지상업중·고등학교에 입학지원서를 냈다가 6·25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배움을 못했다. 그는 피란생활을 하면서도 배움에 대한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당시 공부를 하고 싶어 집을 나가려고 수차례 마음먹기도 했어요. 하지만 홀어머니를 두고 떠날 수는 없었어요." 그녀는 공부를 계속 하기 위해서는 교수한테 시집가면 되겠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교수는 공부를 시켜 배움을 열어주는 사람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 밖에 구덩이를 파고 교수한테 시집가게 해달라고 수없이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는 것.
하지만 운명은 달랐다. 그녀는 형산강전투 속에서 우연히 알게 된 군인과 펜팔을 하다 19세 나이인 1956년 결혼했다. 남편은 1962년 영천 비무장공비지역 작전수행 중 순직해 전몰군경 미망인이 됐고 혼자 온갖 고생을 하며 슬하에 자식 3명을 반듯하게 키웠다.
그녀는 민간인 최초로 1972년 군용 팬티 봉제공장과 목련모자원을 건립해 전몰군경 미망인들의 자활을 도왔고 1988년에는 목련장학회를 설립해 미망인 자녀와 모자가정 등 지금까지 25회에 걸쳐 1천388명에게 8억5천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안 대표는 1970년 전몰군경미망인회 경상북도 지부장, 1980년 전몰군경미망인회 중앙회 회장과 한국여성복지연합회 회장을 두 차례 역임하는 등 평생 미망인들의 대모로 활약했고 2000년 국민훈장 모란장, 2009년 '장한 어머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살아왔어요. 늘그막에 못 배운 공부를 한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요. 이제 대학 합격이라는 소원을 풀었으니 더 큰 인생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지요."
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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