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남희의 즐거운 책읽기] 구월의 이틀/장정일/랜덤하우스

기존 가치 아닌 새로운 질서로 편입하는 한국사회 모습

'소나무 숲과 길이 있는 곳 /그곳에 구월이 있다 소나무 숲이 /오솔길을 감추고 있는 곳 구름이 나무 한 그루를 /감추고 있는 곳 그곳에 비 내리는 /구월의 이틀이 있다….'

장정일의 소설 '구월의 이틀'을 읽었다. 제목은 류시화의 시에서 가져온 것인데, 여기서 구월의 이틀이란 인생의 가장 찬란했던 한순간을 지칭한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이들의 청춘이 결코 찬란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금'과 '은'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젊은이가 주인공이다. '금'은 광주에서 시민운동을 하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 보좌관이 된 아버지를 둔 광주 출신이다. '은'은 사업에 계속 실패하기만 한 아버지를 둔 부산 출신이다. 둘은 서울에 있는 같은 대학에 합격하여 공교롭게도 똑같은 날 서울로 이사를 가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연히 처음 만나고 나란히 같은 사고를 목격한다. 졸지에 일어난 사고로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어버린 어린아이가 바로 자신들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참 시간이 흐른 뒤이다.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은과 잘생긴 청년 금은 '현대문학의 이해' 강의실에서 만나 친구가 된다. 하지만 희망에 찼던 두 청년이 씁쓸한 환멸을 느끼는 데는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현실정치에 발 담갔다가 결국 자살에 이르게 되는 금의 아버지와, 부유한 형 덕분에 호화로운 삶을 살게 되지만 입주 가정부와 집을 나가 반신불수가 되는 은의 아버지는 실패한 아버지 세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은 후 결국 금은 국가가 시장의 침탈을 방어하거나 시장의 압력을 조절하지 못하는 불균형 속에서 국민이 고통 받는다고 보고, 공적 가치의 수호자로서 국민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반면 은은 배의 바닥짐 같은 사람이나 가치를 좋아한다며 보수가 없으면 국가나 사회도 뒤집어지기 때문에 보수가 되려고 한다. 은은 법학교수인 삼촌의 소개로 보수우익의 대부인 거북선생을 만나고, 거북선생에게 집중 교육을 받게 된다.

은은 '강한 것은 선하고, 강한 것은 아름답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못 배우고 못 가지고 못난 것들은 죽거나, 아니면 최소한 끽소리 없이 고분거리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엘리트는 강자의 이익이 바로 세상의 유일한 진리라는 것을 알고 난 뒤에 강자의 이익을 항상 정의로 포장할 줄 아는 법을 터득해야 하고, 대중들에게는 세상에는 진리가 없다는 사실을 숨긴 채 세상은 위대한 도덕의 힘으로 유지되는 것이라고 교육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은의 삼촌은 그런 은을 일제나 독재에 가담한 원죄가 있는 올드 라이트나 좌파에 대한 원한이나 피해 의식이 있는 뉴 라이트와 다른, 원죄도 원한도 없는 순수한 우파, 영 라이트 혹은 퓨어 라이트(pure right)라며 치켜세워준다. 그리고 곧 시작될 '대한민국 재건국' 운동은 그런 정신적 기반 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본래 문학을 지망했으나 정치가가 되기로 결심하는 은과, 정치가의 꿈을 가졌다가 작가가 되기로 마음을 바꾸고 고향인 광주로 향하는 금. 금의 귀향은 이렇게 묘사된다.

'누군가는 고향을 떠나서 새로운 곳에 근착하고, 누군가는 착근에 실패하고 옛 고향으로 되돌아온다.… 아무에게도 나의 패배를 들키지 않을 장소, 내 영혼에 영성을 부여할 성스러운 장소가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하지만 남한만으로는 너무 좁아서, 고작 우리는 고향으로 내려갈 뿐이다.'

다음 해 헌법재판소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사건을 최종 판결하던 날, 금과 은은 우연히 헌법재판소 정문에서 마주친다. 두 사람은 대립하고 있던 각자의 진영에서 빠져나와 포옹을 한다. 그리고 그 장소를 벗어나, 함께 대학을 다녔던 지난 1년을 추억하며 우정을 확인한다.

이 소설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격랑 속에서 길을 잃고, 길을 찾아가는 두 젊은이의 성장기를 보여준다. 자긍심에 찬, 젊고 순수한 우익 청년의 성장기를 쓰고 싶었다는 작가 장정일이 이 소설을 통해 진정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상상하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들의 몫이다.

수성구립 용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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