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탄신일이 낀 연휴가 있어 고향을 방문했다. 어머니가 초파일에 절에 가고 싶어 하셔서 모시고 갔다. 주차장엔 차가 가득했고 사찰로 가는 길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길 양 가에는 닭꼬치, 옥수수 등의 먹을거리와 모자, 지팡이 등의 일상용품을 파는 간이 상점들이 복잡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런 상점들에게 눈길 한 번도 주지 않고 걸으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어느 상점 앞으로 다가서셨다. 목판 위에 모조품 진주목거리, 팔찌, 반지 등을 펴놓고 파는 가게였다.
어머니는 그것들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셨다. 그 광경을 보자 문득 90세 되신 어머니도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등이 굽어 하늘도 잘 올려다 볼 수 없는 어머니도 아름다워지고 싶은 여자이시구나! 평생 동안의 농사일로 검게 타고 쭈글쭈글한 피부의 목에도 걸어보고 싶은 목걸이가 있고, 나무 밑동처럼 뭉툭한 손가락에도 끼어보고 싶은 반지가 있구나!
"어머니, 반지 하나 사 드릴까요?" "에이, 필요 없다. 저건 모조품이다." 어머니는 완강하게 손사래를 치셨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 저건 모조품이지. 기왕이면 진짜를 사 드려야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산사로 향하시는 어머니의 뒤를 따랐다.
의과대학생에게 수필 강의를 하고 글 한 편씩을 써오라고 했다. 제출한 것을 한 편 한 편 읽다가 어느 여학생 글의 내용에 의문이 생겼다. 고등학교 동기들의 모임에 갔다가 공부하느라고 망가진 자기 몸매와 날씬한 친구들의 모습이 비교돼 죽고 싶을 만큼 열등감을 느꼈다는 내용이었다. '의과대학생이라면 몸의 모습이 조금 망가졌다 하더라도, 동기들에게 우월감은 아니더라도 열등감은 느끼지 않지 않을까'하는 의문이 들어 우리 과의 여성 전공의 선생에게 글의 내용을 들려준 뒤 진실한 글이냐고 물었다.
"그 글의 내용은 진실일 겁니다. 제 나이가 되면 몸의 형태가 이미 망가져 관심이 적지만 그 학생 때에는 그 글의 내용이 참말일 것입니다."
그렇다. 아흔이 넘은 어머니도, 미래에 의사가 될 것이라는 자부심에 차있을 것 같은 의과대학 여학생도 아름다워지고 싶은 여자인 것이다. 아흔 넘은 노인이 뭉툭한 손가락에 진주반지를 끼웠다고, 의과대학 여학생이 손톱에 빨간 색칠을 했다고 누가 욕을 할 것인가. 그렇지만 나는 아직 어머니에게 진짜든 모조품이든 진주로 만든 장식품을 사드리지 못하고 있고, 여자 전공의에게는 몸매를 꾸밀 정신적 여유를 주지 못하고 있다. '진짜를 사드리면 혹시 혼자 사시는 어머니에게 강도라도 덤벼들어 해를 끼치지 않을까, 전문의가 되면 신랑감이 줄줄이 늘어설 텐데 무얼…'이라는 되지도 않은 핑계를 대면서.
임만빈 계명대 동산의료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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