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거꾸로 된 민(民)과 관(官)

작년 9월과 이달 경북에서 발생한 불산과 염산 누출 사고를 보면서 민(民)과 관(官)의 대응 방식이 뒤바뀌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주민들은 신속하고 차분하게 대처한 반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미숙하고 허둥대는 모습을 연출, 주객이 전도된 격이었다. 관이 초동 대처는 물론 사후 수습과 대책 마련도 엉터리로 하는 바람에 제2, 제3의 비슷한 사고가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이다.

상주 청리면에 사는 한 50대 주민은 이달 12일 자신의 집에서 600m 떨어진 공장 쪽에서 흰 연기가 올라오자, 이를 심상치 않게 여기고 재빨리 휴대전화로 연락을 취했다. 2분에서 5분 간격으로 면사무소, 시청, 119, 112에 차례로 신고를 한 것이다. 신속하면서도 빈틈이 없는 상황 대처였다. 그는 경찰이나 군인 등 비상 상황에 대비해 훈련받은 요원이 아니었다. 그냥 공장 인근에서 소를 키우는 축산농이었다.

두 맹독성 화학물 누출 사고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사태를 수습하기는커녕 더 악화시킨 것은 관 쪽이었다.

5명이 숨지고 수천 명이 병원 치료를 받은 작년 구미 불산 누출 사고에서 가장 많은 질타를 받은 곳은 환경 관련 기관이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사고 다음날 새벽 불산이 누출된 공장과 인근 마을에서 불산 농도를 측정한 뒤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되지 않았다'고 환경부와 구미시 등에 통보한 뒤 이날 정오 철수해 버렸다. 어설픈 측정을 한 뒤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해 버린 것이다. 대구환경청이 사고 당일 화학물질 사고 '경계경보'에 이어 '심각단계'를 발령했으나, 국립환경과학원의 이 섣부른 판단으로 곧바로 심각단계를 해제하고 상황을 조기에 마무리하려고 한 것이다. 결국 이 사고 여파는 환경과학원의 판단과 달리 일파만파로 퍼져 나갔다. 농작물과 가축, 차량은 물론 막대한 인명 피해까지 낸 뒤 대피한 주민들이 마을로 되돌아가기까지 3달가량 걸렸는데도 관(官)은 사고 하루 만에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별것 아닌 것'으로 결론 내버린 것이다. 게다가 환경부장관은 사고가 발생한 지 열흘 만에야 피해를 입은 마을을 잠깐 찾았다 곧바로 상경하는 등 정부의 늑장 대응도 분통을 터지게 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 주민들은 오히려 신속히 대피 지역으로 옮긴 뒤 춥고 불편한 잠자리와 먹을거리, 힘든 하루하루를 감내하면서 차분히 대응해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번 염산 누출 사고에서도 주민의 신속한 신고와 달리 관은 한심한 대응 방식을 그대로 노출했다. 상주시는 사고 당일 주민 전화와 청리면사무소의 팩시밀리 보고서 등 두 차례나 연락을 받고도 이를 소방서나 경찰서에 전하지 않았다. 불산 누출 사고 발생 다음 달 경상북도와 23개 시군이 주고받은 '구미 화학 사고 발생 시 초동 대처가 미흡한 경우가 있어 화학 사고 대응 비상연락망, 유관 기관(소방서, 군부대)과 긴밀한 상호 연락 체계 구축'이란 공문을 무색게 했다.

불산 사고 이후 초동 대처뿐 아니라 사후 수습과 대책 마련까지 엉터리로 이뤄졌다는 것은 지역 자치단체와 소방서 합동 점검 결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경상북도와 해당 시군, 소방서, 한국가스안전공사 등은 작년 10월 유독물 취급 시설 425개 업소에 대한 합동 점검을 벌인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당시 점검 과정에서 이번 염산 누출 사고가 발생한 웅진폴리실리콘㈜에 대해서는 정작 조업을 중단했다는 이유로 현장 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심한 것은 합동 점검반이 당시 이 업체가 6종의 유독물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안전 관리자도 없고 자체 방제 계획도 수립하지 않은 것을 확인했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상주시도 작년 12월 이 업체에 대해 위험 시설물 관리 실태를 점검했으나 '이상 없음' 판정을 내렸다.

이번에 염산 누출 사고가 난 업체에 대한 점검이 두 차례나 이뤄졌으나, 말 그대로 점검에만 그쳐 결국 화를 불렀다. 당시 현장 점검만 제대로 했더라도, 안전 관리자 등 미흡한 부분에 대한 보완 조치만 취했더라도 이번 염산 누출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관의 대응을 나무라지 않을 수 없다.

민의 편안한 삶을 위해 관이 존재한다. 관이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사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믿음직한 관의 역할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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