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상학의 시와 함께] 입춘

# 입춘 -안성덕(1955~)

골판지는 골판지대로 깡통은 깡통대로

끼리끼리 모여야 밥이 된다고

삼천변 요요要要자원* 파지 같은 생들이

마대자루에 빈 페트병 고봉으로 눌러 담는다

오락가락하던 진눈깨비가 물러간다

유모차에 생활정보지 걷어오는 할머니

치마꼬리 따라온 손주 볼이 발그레하다

어슬렁거리던 누렁이가 꼬리친다

쥐불 놓는 아이들의 함성 오종종 모여 있는 갈밭

풀린 연기 사이로 북녘을 가늠하는

오리떼 몸통이 통통하다

버들개지 은대궁도 제법 토실하다

모두 요요夭夭하니

풀려나간 요요yoyo가 제 목줄 감아올리듯

스르르 계절조차 되돌아온다

쥐불 놓은 갈밭에도 펜촉 같은 새순이 돋아

돌아올 개개비떼 노래 낱낱이 기록하겠다

코흘리개 맡겨놓고 감감 소식 없는 며느리도

한 소식 보내오겠다

*전주 삼천변에 자원재활용센터 요요자원이 있다

- 2009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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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학상의 새해 첫날은 입춘이다. 계사년 입춘은 2월 4일 1시 13분에 들어 우수가 드는 18일 21시까지 약 15일간 이어진다. 땅 속에서는 한 점 뜨거움이 들어서지만 겉으로는 겨울의 야멸찬 뒷모습이 이어진다. 우수가 되어야만 우리가 생각하는 봄의 모습이 서서히 나타난다. 버들강아지 눈 뜨고 사초의 밑뿌리 움 돋는다. 절기는 기운이 앞서고 형상이 뒤따르며 순환한다고 배웠다. 절기는 어김없다. 이 시가 생각하는 재활용품의 순환은 입춘에 잘 어울린다. 그러나 사람은 개체 순환, 즉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다만 세대 간의 순환으로 이어지는데 여기서는 할머니와 손주 사이의 이음이 불안하다. 아들과 며느리의 순환 고리는 어디쯤서 어긋났는지. '펜촉 같은 새순'이 돋아나는 봄을 믿는 시인의 마음이 아이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아이의 꿈을 생각해본다. 입춘처럼 사람살이의 순환도 마음속에 한 점 꿈이 들어서는 때가 이렇듯 추운 모양이다.

안상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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