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월 대구의 한 유전자 검사기관으로 굳은 표정을 한 30대 남성 A씨가 찾아왔다. A씨는 종업원에게 다가가 하얀색 봉투를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봉투 안에 담겨 있는 것은 머리카락 6가닥. A씨와 6개월 전 태어난 아들의 머리카락이었다. A씨는 "아내가 임신한 기간 가출을 했었는데 그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며 아들과의 친자 확인을 요청했다. 5일 후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한 A씨가 감정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유전자 검사기관을 찾았다. 감정서를 본 순간 A씨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감정 결과가 '불일치'였던 것. A씨는 "아니길 바랐는데 이제 가족 얼굴을 어떻게 볼지 걱정이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친자 확인 등 유전자 검사를 하는 사람이 급증하면서 민간 유전자 검사기관이 성업 중이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에 신고된 유전자 검사기관은 전국에서 191개이며, 대구지역에만 10개가 있다.
대구지역 한 유전자 검사기관에 따르면 한 달 평균 70~80명이 유전자 검사 의뢰를 하고 있다. 이 업체 관계자는 "유전자 검사 의뢰가 매년 10~15%씩 늘어나고 있다. 드라마를 통해 친자 확인 수단으로 유전자 확인이 알려지면서 문의 전화가 꾸준히 오고 있다"고 말했다.
업체 수가 늘어나면서 5년 전 1명에 25만원가량 하던 검사 비용은 12만원으로 떨어졌다. 유전자 검사 종류는 친자 확인, 가족 확인, 개인 식별 검사 등 다양하다. 이 중 부모와 자식의 혈연관계를 입증하는 친자 확인 의뢰가 검사의 80~90%를 차지한다.
이들이 감정 의뢰를 하는 사연은 드라마 속 갈등 상황만큼 다양하다. 시부모님이 '아들과 닮지 않았다', '며느리의 생활이 문란했다'는 이유로 아들과 가족 몰래 검사를 의뢰하거나, 남편이 결혼 뒤 자신의 아들이 맞는지 긴가민가해서 기관을 방문하기도 한다. 또 배우자의 불륜을 의심해 배우자 주변에 묻어 있는 머리카락 등을 채취해 배우자와 일치하는지를 확인하기도 한다.
검사 방법은 간단하다. 검사 대상자의 모근이 있는 머리카락이나 혈액, 침, 손'발톱 등을 채취해 우편으로 보내거나 방문해 제출하면 된다. 이혼이나 재산상속 문제로 법원에 제출하거나 재외 동포의 국적 취득을 위해 감정서가 필요할 때는 연구원이 직접 머리카락, 손'발톱 등을 채취하는 정식 검증 절차를 밟아야 한다. 검사 결과는 하루 뒤 알 수 있다.
드라마와 다른 점은 유전자 검증을 의뢰할 때는 대상자의 검사 동의서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유전자 검사는 유전자를 제공하는 사람의 서면 동의서가 있어야 할 수 있다. 이를 어긴 검사기관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배우자나 가족 몰래 검사기관을 찾아가 유전자 검증을 의뢰하는 상황이 왕왕 연출된다.
실제로 기자가 유전자 검사기관에 검사를 문의하자 직원은 "공공기관에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의문을 풀기 위해 검사를 할 때는 의뢰자, 대상자의 신분 확인과 동의서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대구지역 민간 유전자 검사기관 관계자는 "친자 확인이나 배우자를 의심해 기관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지만 한편으론 평생 찜찜함을 안고 살아야 하는 불편한 마음이 이해도 된다"고 말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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