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처마들을 지나 천마총 부근 골목을 벗어나자 서라벌 들판.
첨성대 위로 연이 바람 소리를 내고, 브레이크를 풀자 바퀴는 뜀박질하는 아이와 능을 뒤로 한 채 들판 사이 계림으로 미끄러져 내달린다. 때마침, 누런 들 위로 붓놀림처럼 선회하는 까마귀 떼! 계림 숲 가장자리, 향가비에 새겨진 기파랑의 기억도 고목 뿌리 어디쯤 끝난 것일까. 그렇게 잠시 묵상했던 페달이 다시 안압지를 향해 오르고 있다.
팽팽했던 체인을 입구에 풀어두고 안압지 못 주변을 걷는 내 걸음 앞에, 노부부가 산수유 나무 아래 선 채 사진촬영을 부탁한다. 아이패드를 받은 내가 촬영기능을 몰라 쩔쩔매는 순간, 사각 시야에 풍경이 사라지고 있다. 스물한 살의 늦은 오후, 책상에 앉아있던 내게 집조차 낯설어진 것은 분명히 하도 심심했던 탓이었을 것이다.
그날 몸이 불국사행 버스에 실린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창밖이 어둑해져 있었다. 중년 신사께서 무슨 젊은이가 국토에 그렇게 무심할 수 있냐며, 경주가 두 번째라는 날 꾸짖던 말씀이 아직 생생하다. 이후, 내가 경주를 신혼여행지로 삼은 뒤 포항에 거주하며 반 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를 지금처럼 목욕탕 오가듯 쏘다닐 줄 몰랐다.
아이패드 화면이 되살아나며 고대 정원의 물상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맞은 편 길 너머 들려온 종소리가 국악에 취한 내 발걸음을 깨우기 시작한다. 저음의 성덕대왕신종의 진동을 좇아 다다른 미술관 복도, 얼굴과 팔을 잃은 반가사유상! 이 토르소처럼, 논길 위의 황룡사 목탑도 면목(面目)을 태워 이름 모를 새를 위한 길을 미리 비워둔 것일까.
박물관 입구에 기대섰던 바퀴가 교동 만석꾼 최 씨 고택의 문턱을 넘자 '재물은 분뇨와 같아 한곳에 모아 두면 악취가 나 견딜 수 없고 골고루 사방에 흩뿌리면 거름이 되는 법'이라는 교훈 앞에 멎는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사회적 인사의 책무는 동서가 통하는 법인가 보다. 한편, 한창 마을 뒤편으로, 월정교 복원공사가 진행 중이다. 원효가 여기 내에서 젖은 옷을 핑계로 요석궁에 들었다고 전해온다. 요석공주가 차렸을 그 밥상이나 시장이 반찬인 지금 내 입속 김밥 맛이 무엇이 다를까. 그만 황남빵 한 상자라도 사들고 귀가하려면 핸들을 일으켜 세워야겠다.
시내 거리공연 탓에 몰려든 젊은이들 뒤로, 쇼윈도 풍경 속 자전거 바퀴살에 오후 햇살이 흐르고 있다. 쇼윈도 속 산수유꽃 빛 스커트도 유리창을 샛노랗게 물들이고 있다.
장두현<시인·문학박사 oksan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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