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같은 대구 하늘 아래…區마다 너무 다른 '공기의 질'

서구 염색단지 등 주택가 주민들 수십년째 호흡 고통

4일 오후 대구 서구 비산동 대구염색산업단지 인근 주택가. 길바닥에 갈색 녹 가루가 내려앉아 있었다. 20℃가 넘는 낮 기온에도 주택 창문은 대부분 닫혀 있었고 벽과 문, 창문은 뭉쳐진 먼지로 얼룩이 져 있었다. 한 건물은 기둥 콘크리트가 군데군데 떨어져 철 구조물이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다. 골목 구석구석 소규모 작업장에선 금속을 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굵고 높은 굴뚝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같은 날 오후 달서구 이곡동 성서산업단지 인근 주택가. 1층 상가와 2층 가정집 형태의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외식 일반음식점'이라고 적힌 낡은 간판 아래 1층은 창고로 쓰이고 있었다. 음식이 아닌 시멘트 묻은 삽과 철제 건축자재 등이 채우고 있었다. 다른 건물 1층은 삭아서 너절해진 간판에 '주이탕'(추어탕)이란 글씨만 남아 있었다. 기울어진 전봇대 기둥엔 '주택매매'라는 종이가 찢겨져 떨어질 듯 붙어 있었다.

발암물질을 포함한 화학물질 대기배출량이 많은 대구 서구와 달서구의 주민들이 생활에 불편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인구가 고령화되고 빈집이 느는 등 도심 공동화(空洞化) 문제를 겪고 있다.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서구의 염색산업단지는 2010년 64만6천877㎏의 화학물질을 대기로 배출했고 이 가운데 발암물질 8만4천972㎏(13.1%)을 포함하고 있었다. 같은 기간 달서구의 성서산업단지는 화학물질 29만7천689㎏ 중 8만1천948㎏(27.5%), 달성군의 달성산업단지는 22만2천319㎏ 중 5만6천474㎏(25.4%)의 발암물질을 공기 중으로 날려 보냈다.

서구 비산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25년째 생활하고 있는 박용수(56) 씨는 공장으로 식당 음식을 배달할 때 공기를 크게 들이마신 뒤 숨을 참고 종종걸음으로 다니고 있다. 눈이 따갑고 인근 폐수처리장에선 정화조 냄새가 고약했다. 박 씨는 "근처 달서천으로 운동을 나갈 때 마스크를 써도 매캐한 냄새가 비집고 들어와 코를 자극한다"며 "주거환경이 좋지 않은 까닭에 젊은 사람들은 잘 들어오지 않아 지금은 동네주민 대부분이 노인이다"고 말했다.

서구 이현동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 이창일(53) 씨는 흐린 날이면 인근 필름 제조업체에서 고약한 화학냄새가 풍겨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씨는 "예전엔 2, 3층 주택에 4, 5가구가 옹기종기 살았는데 지금은 빈방이 늘어나 창고로 쓰기도 한다"며 "근처 초등학교의 경우 학생이 3분의 1로 줄었다"고 했다.

달서구 이곡동에서 10년 가까이 생활하고 있는 주부 윤명희(41) 씨는 성서산단의 먼지와 달구벌대로의 자동차 매연 등으로 대기 질이 좋지 않은데도 녹지공간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윤 씨는 "도금과 도색, 레미콘 공장 등에서 먼지가 많이 날아오고 오후 10시가 넘어서도 공장에서 악취가 난다"며 "냄새가 난다고 구청에 신고를 했지만 작고 영세한 업체가 많아서 원인을 찾기도 힘들다"고 했다.

이우원 환경부 대기관리과 사무관은 "독성과 배출량, 생태계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추가적으로 대기 오염물질 배출기준을 마련하고 있다"며 "앞으로 심사평가위원회에서 대기 오염 물질을 평가할 계획이다"고 했다. 조영탁 대구경북연구원 녹색환경팀 연구원은 "대구 이외 지역에서 날아 들어온 물질이 대구의 대기오염에 미치는 영향도 크기 때문에 무작정 대구지역의 업체들을 규제하는 것만으로는 당장 대기 오염을 줄이는 데 실효성이 적다"며 "자동 측정장치를 통해 데이터를 쌓아 배출기준을 마련하는 등 단계적으로 대기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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