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다시 생각나는 '빨간 피터의 고백'

대구의 한 학교가 교내에서 소를 키우겠다고 한다. 농촌 학교에서도 어려울 일이 도시 학교에서 시도되고 있어 매우 이례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 번 물어봤더니 외양간을 지으며 목공예를 이해하고, 급식 잔반을 여물로, 소똥은 인근 꽃밭 퇴비로 활용하는 경험 등을 통해 책임감을 키우는 것은 물론 그 이상의 교육적 효과가 있지 않겠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소를 키워보는 경험은 크게 나쁠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공생 관계를 체험하다 보면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심성도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학교처럼 동물원 대신 동물과 직접 일대일로 대면하는 교육 방식이 늘고 있다고 한다. TV 동물농장과 같은 공중파 프로그램이 10년 이상 장수하는 인기 비결이 뭘까. 아마 동물과 인간이 소통하는 모습을 재미있고 교육적으로 보여주기 때문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동물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동물원의 탄생'을 쓴 니겔 로스펠스에 의하면 사람들은 이미 동물원이, 동물이 아닌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연 서식지를 닮게 하거나, 철창을 없애기 위해 해자(垓字)를 개발했더라도 인간의 죄의식을 감추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언급했다. 즐거움과 교육적 효과를 믿었던 동물원의 이면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을 제기한 것이다. 동물원은 19세기 초 독일의 칼 하겐베크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 이전까지는 인간의 식량으로만 여겨지던 동물을 전시, 관광 상품으로 바꾼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는 결국 인간의 이기적 사고를 반영한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동물원은 이런 부정적 요소만 있는 것일까?

세계 유명 동물원들은 종 보존 프로그램 운영에 눈을 돌림으로써 이중의 수확을 얻고 있다고 한다. 동물의 보호와 보존에 대한 대중 교육 역할이 그것이다. 아울러 희귀 동물의 멸종을 막는 연구를 통해 과학을 보조하는 경험을 쌓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접하면 우리 지역 동물원의 현주소가 안타깝게 다가온다. 해묵은 민원이 된 달성공원 동물원의 새 둥지 찾기가 벌써 10년을 훌쩍 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시가 올해 하반기 사업 착수 의향을 밝혔지만 쉽게 진행될지, 과거와 다른 동물원 조성 아이디어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유치를 희망하는 지역에는 벌써부터 플래카드가 여럿 나붙었다. 동물원 이전특위 또는 추진위가 만들어져 경쟁하는 모양새도 나타나고 있다.

이쯤에서 한 번 생각해보자. 달성공원 동물원 이전의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혹자는 도심 경관 복원보다는 후순위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늦었을지도 모를 동물의 권리를 논의하는 계기로 보면 어떨까. 동물 우리 수준쯤으로 인식되고 있는 지금의 공간이 안타까워서만은 아니다. 별개의 사업을 위해 피치 못해 동물원을 이전하는 듯 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근래의 동물원 이전 논의는 달성토성 복원 역사문화벨트 만들기가 중심이 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식이라면 특정 지역에 동물원이 이전된다 하더라도 몇십 년 후, 오늘날과 똑같은 이전의 문제가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이는 유치를 희망하는 쪽이 잘 살펴야 할 문제일 것이다. 사람도 살고 동물도 살고 도시도 사는 트리플 윈이 동물원 이전의 취지라면 좋겠다. 동물원이 사람과 동물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공간이 되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1970, 80년대 큰 호응을 얻은 모노드라마 '빨간 피터의 고백'은 현재 진행형이다. 동물원에 갇히기 싫어 쇼 무대에 섰다는 원숭이 빨간 피터의 하소연은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동물원은 동물 보호, 종의 보전 등 인간 중심적 사고를 넘어서야 한다고 본다. 미래의 동물원은 동물의 생존과 존재 이유를 각성케 하는 역할이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동물원의 지향점은 동물에 대한 배려이고, 존재 이유는 공생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동물원의 이전 민원과 유치 민원이 겹치는 묘한 아이러니를 보니 객쩍은 생각이 든다. 어디에 옮겨지든 개인적으로 예전 동물원의 필수품이던 창살과 울타리, 의도된 전시를 정중히 사양한다.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메시지를 가르칠 동물원이 옳다.

이권희/문화산업전문기업 (주)ATBT 대표 lgh@atb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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