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특정 분야에서 쓰고 있는 '나와바리'라는 일본말이 있다. 노름꾼이나 폭력배 등의 세력 범위를 뜻하고 동물의 텃세권이나 세력권을 가리킨다. 원래 '줄을 쳐서 경계를 정한다'는 뜻을 가진 이 말은 동물들의 세계에서는 먹이와 암컷을 의미한다. 먹이는 생존의 문제이고 암컷은 종족 보존과 직결된다. 수컷이 이 나와바리 싸움에서 밀리거나 지면 먹이도 빼앗기고 암컷도 잃어버려 쫓겨나거나 죽는 수뿐이다.
영화에서 보는 조폭의 세계도 닮은 데가 많다. 남의 나와바리를 넘봤다가는 죽음이 뒤따르거나 '전쟁'이 일어난다. 나와바리가 곧 영업권이고 이는 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돈은 이 세계에서 힘이자 권력이다.
그렇다면 더 배우고, 지위도 높고, 돈도 많고, 힘도 센 이들은 어떨까? 겉으로는 '고상해' 보이긴 하겠지만 다들 예상하는 대로 동물이나 조폭보다 나을 게 없다. 저들에게도 돈과 힘은 전부다. 그 돈을 만들어내는 이권이나 권력은 존재의 기반이자 이유이다. 그걸 놓고 더 가지려 아귀다툼을 벌인다.
'언터처블'이라는 대기업을 보자. 동네 시장통은 물론 구멍가게의 영역까지 싹쓸이하려 한다. 남이 가진 것을 더 갖기 위해 반칙과 불법도 마다하지 않는다. 경제민주화 등 구호가 난무할 때는 주춤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감시의 눈이 뜸하면 금방 '독식 본색'을 드러낸다. 돈 때문이다.
대기업만 그런가? 아니다. 돈과 권력이나 이권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예외가 없다. 손에 가진 것은 놓치지 않으려 들고, 절대로 남에게 나눠줄 생각도 없고, 남이 가진 것마저도 내가 가져야겠다고 몸부림친다. 나눔이나 공존, 동반이라는 단어가 저들의 사전에는 없다.
사사건건 불거지는 검찰과 경찰의 으르렁거림이 그렇다. 대표적 권력기관인 만큼 '힘'을 가졌으니 대놓고 욕하기도 뭣하다. 하지만 국민들이 가만히 있다고 속까지 없는 건 아니다. 부글부글 끓고 있음을 알기나 하는지. 의사와 약사, 의사와 한의사들의 사생결단식 다툼이 또 그렇다. 국민들이 겪을 불편과 고통에 대해 작은 배려라도 있었더라면 그렇게 막 나가지는 않았을 텐데. 아무리 돈 때문이라도 그렇지!
나랏일을 하신다는 '나으리' 세계도 대단하다. 나와바리가 줄어들라치면 호들갑을 떤다. 심지어 헌법까지 동원하면서 영역 축소를 막으려 든다. 이처럼 오만 가지 이유를 대지만 결국은 돈과 권력 때문이라는 것을 국민들은 잘 안다. 대신 책임 소재가 뒤따르는 일을 만나면 피하기와 떠넘기기에 바쁘다. 일은 미루고 돈과 힘은 끌어모으는 것이 이들의 생리인가?
어찌 보면 동물이나 조폭보다 저들이 더하다. 전자는 목숨이 위협받을 때만 전쟁을 벌인다. 시도 때도 없이 욕심을 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들은 배가 부른데도 꾸역꾸역 더 먹고, 많이 가졌음에도 또 더 가지려고만 한다. 대단한 '식욕'과 '탐욕'이다. 고상한 말로 하면 집단 이기주의다. 공직 사회의 부처 이기주의와는 형제지간이다.
융복합의 시대다. '퓨전'은 유행어를 넘어 상용어가 됐다.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협력과 상생이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사회 어느 분야든 이런 시대 흐름에 떨어져 있을 수는 없다. 대통령은 기회가 날 때마다 "칸막이를 없애고, 내 것만 챙기지 말고, 서로 소통하고, 협력을 하라"고 했다. 그래도 저들 '특수집단'은 들은 척도 않고, 꿈쩍도 않을 정도로 힘이 세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금처럼 정권 초기에는 저들도 잠시 조용하다. 새 권력의 눈치를 살피고, 속된 말로 '간'을 보느라 그렇다. 그러다 대통령의 힘이 빠지고 말발이 서지 않을 때쯤 되면 고개를 쳐들고 본래의 낯 두꺼움을 되찾으려 할 것이다. 시간이 많이 없다.
해법은 딱 하나다. 대통령이 지금 당장 직접 챙기는 것이다. 높고 두꺼워져만 가는 저들의 '나와바리' 장벽을 철저히 깨부수는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안 나서고, 안 챙기면 별의별 이유를 대며 달려드는 저들의 저항을 이겨낼 수가 없다. 쟁쟁한 전임자 모두 저들에게 휘둘려 결국 이루지 못한 일이다.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만일 대통령이 여기서 성과를 낸다면 인사에서의 실점을 모두 만회하고도 남을 것이다. 물론 더 많은 점수를 얻을 수도 있다. 정말로 남다르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강단'과 '포스'에 기대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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