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누가 하늘을 독점하는가

멀리서 산등성을 바라보니 겹겹이 어깨를 맞댄 가족 같다. 올망졸망 곡선을 이룬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구부러진 길을 얼마간 달렸을까. 어느새 눈앞은 푸른빛에서 온통 누런빛으로 변해 있었다. 하늘을 향해 자라나던 초목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산을 벗겨낸 골프장은 마치 군데군데 상처 입은 동물의 피부 같아 보여서 마음이 싸하게 아려온다. 제 땅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마는 차마 그 시린 광경을 보고 그냥 지나치기가 미안할 따름이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우리는 과학의 계단을 오르며 꿈꾸었던 많은 것을 실현시켜 놓았다. 현재 우리는 두뇌를 짜내고 고안한, 과연 신(神)이라도 생각했을까 싶은 삶의 편리와 풍요에 한껏 도취해 있다. 그러나 돌아보면 과거 어느 때에도 우리 몸과 같은 이 고귀한 땅을 제 이득을 위해 함부로 훼손시키고 파헤친 적은 없다.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에서 윤씨 부인은 서희에게 평사리의 너른 땅을 내려다보여 주며 이렇게 말한다. "서희야, 네가 가진 것은 땅이 아니다. 땅속에 숨어 있는 생명이야. 그걸 잊어서는 아니 되느니라." 그렇다. 우리가 사는 땅이란 '땅' 이상의 값어치가 숨어 있다. 그것은 단순히 경제적 가치가 아니라 생명의 원천이며,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삶의 마지막 안식처이며, 우리가 되찾아야 할 정신적 뿌리다. 그래서 땅은 단순 소유물의 의미가 아닌, 모두가 함께 누려야 하는 생명체와 같은 것이다. 우리 또한 그걸 잊어서는 아니 된다.

내가 소유하고 등기했다지만 그 속성으로 볼 때, 내 것이어도 내 것이 아닌 것이 있다. 하늘, 대기, 공기, 물이 그러하다. 땅은 마치 하늘과 같은 것이다. 하늘을 누가 독점하려 드는가. 산이 내 것이라고 내 마음대로 파헤쳐서는 안 된다. 산과 땅은 우리 모두가 함께 바라보며 쉼을 얻고 지치고 곤한 마음이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곳이며, 함께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는 곳, 우리 모두의 땅이다.

땅뿐만 아니라 내가 가진 소유물이 그렇다. 알고 보면 처음부터 제 것인 것은 없다. '청지기 의식'이 있다.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은 처음부터 신(神)이 인간에게 부과한 사명의 도구로 여기는 의식이다. 즉 인간은 소유자가 아니라 관리자인 셈이다. 탐욕의 원인이 무엇인가. 등기적 소유를 곧 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 힘으로 얻었기에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씨를 뿌리고 내가 가꾸고 내가 거두니까 다 내 것으로 여긴다. 과연 그럴까. 씨를 뿌리지만 적절할 때 비와 햇빛, 알맞은 기후가 아니었다면 가을에 열매가 영글지 못한다. 지금 내 손에 쥐고 있는 것은 하늘, 땅,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근본적으로 얻기 불가능한 것들이다. 따라서 "내 것 내 마음대로 해, 너는 참견 마"라는 말은 마치 구멍 뚫려 침몰하는 배 위에서 공멸하는지도 모르고 탐욕에 눈이 멀어 금덩어리를 품고 있는 격이다.

아스팔트 길은 대지의 숨구멍을 끊고 산허리를 뱀처럼 휘감고 있다. 또 갯벌을 덮어 신도시를 건설하려 한다. 이런 경제적인 논리로 이룩한 세상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것은 '편리'뿐이다. 과연 편리가 자살하는 우리의 아이들, 절망하는 청년들과 우울에 빠진 이 사회를 구할 수 있을까.

내가 앉아 있는 땅이 침몰하는 줄도 모르고 무지한 파괴를 문명을 향한 열정으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세상과 짝짜꿍하는 텅 빈 사람들이 어찌 땅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도 귀하게 여기겠는가.

사람들은 말한다. 행복은 성공의 결과물이라고. 결코 그렇지 않다. 탐욕과 행복은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다. 순서가 바뀌었다. 행복은 소유의 산물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은 진정한 성공을 끌어오는 원동력이다.

혼자 행복할 수 없다. 같이 사느냐, 같이 멸하게 되느냐의 선택뿐이다. 머지않아 거침없이 질주하던 문명의 방황을 멈추는 날을 기대해야 한다. 하늘이 내 것 아니듯 산하도 내 것 아님을 알고, 여울져가는 시간을 누리며 호젓한 시골길을 거니는 꿈을 꾸어야 한다. 이것이 다 같이 사는 길이다.

이상렬/수필가·목사 love2060@hanmail.net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