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에는 불안이 황사처럼 덮쳐오던 날이 잦았습니다. 북쪽에서 협박과 공갈을 담은 막말들을 끊임없이 난사(亂射)해 왔기 때문이지요. 그 섬뜩한 말들이 모두 심리전의 총알이며 전쟁은 결코 터지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을 믿고 또 믿고 싶었지만, 미국 사는 딸애가 가끔씩 국제 전화를 걸어와서 "아빠 정말 괜찮아? 요즘 집 밖에만 나가면 만나는 사람마다 네 나라에 전쟁이 날 것만 같은데 괜찮으냐?"고 물어 와서 걱정이라고 할 때마다, 그런 일은 없을 거라 큰소리쳐 놓고도 돌아서면 왠지 가슴 한구석에 불안이 생솔 연기를 피우기도 했습니다.
일상화된 위협 속에서 살다 보니 꽃샘바람의 작은 손길에도 마음의 문이 대책 없이 덜컹덜컹 흔들렸습니다. 눈 녹은 산자락마다 연분홍 치마 휘날리듯 진달래가 피고, 동네 골목마다 개나리 노란 봇물이 홍수로 흘러도 그 풍경 속에 수상한 암호가 숨겨져 있지나 않을까 괜히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요.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북한 관련 뉴스만 나오면 괜히 짜증이 나 얼른 야구 중계방송으로 채널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벚꽃놀이 떠나는 버스 안에서까지 유행가 메들리에 어깨를 들썩이기보다는 "전쟁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떠들어대는 동네 만물박사의 시사평론에 귀를 기울이며 위안을 얻기도 했었습니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날아 나오는 북한 아나운서들의 격앙된 말투를 들을 때마다 문득문득 최 주사님이 생각났습니다. 삼십여 년 전 제가 교사로 근무했던 학교에서 사환으로 일했던 분이었는데, 그분의 투박한 함경도 사투리도 유난했었으니까요. 주사님은 그 학교의 터줏대감이었습니다. 교사건 행정 직원이건 모두가 발령받아 오는 날부터 떠나갈 생각만 한다는, 그래서 떠나면 영전이라던 그 변두리 학교에, 당시 주사님은 이십 년도 넘게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있었지요.
주사님과 함께 당직을 서던 어느 봄날 저녁, 숙직실 앞에서 은은한 달빛에 가슴을 온통 열어젖힌 목련나무 아래서 밤이 이슥하도록 막걸릿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취기에 젖자, 주사님도 가슴을 열어 한 서린 이야기들을 하늘의 별처럼 쏟아 냈었는데요. 일사 후퇴 당시 열다섯 나이로 혼자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북에 두고 온 부모님이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학교 담에 붙어 선 13평 아파트에서 혼자 조석을 끓이며 지낸다고 했습니다. 학교 뒷산의 모습이 함경도 고향 마을 뒷산과 너무나 닮았다고 했습니다. 교문 입구에 선 아름드리 느티나무까지 두고 온 고향 마을 입구에 서 있던 나무와 매우 닮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학교를 떠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주사님은 걸어다니는 학교 일지였습니다. 그 학교의 온갖 내력은 물론 언제 무슨 일을 해야 한다는 것까지 모두 꿰뚫고 있었습니다. 어느 교실 바닥 몇 번째 판자가 삭아 새로 갈 때가 되었다거나, 운동장 남쪽 구석의 어떤 나무에 언제 무슨 색의 꽃이 핀다는 소소한 것까지. 그만큼 학교 일에도 열심이었습니다. 단 한 가지, 달빛이 너무 밝아 소쩍새라도 울어대는 밤이면 어디서 혼자 술을 마셨는지 최 주사(酒邪)로 변해 알아듣지도 못하는 사투리로 고함을 질러대며 운동장을 산돼지처럼 헤맸는데, 그때는 그 누구도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해 유월, 6'25에 즈음하여 운동장에서 시사 교육 차원의 교장 선생님의 훈화가 확성기를 타던 날이었습니다. 줄지어 선 아이들의 머리 위로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가운데, 참전 용사 출신의 교장 선생님의 훈화는 따발총 소리와 탱크를 이끌고 휴전선을 넘나들며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6'25 노래까지 부른 뒤 아이들을 데리고 교실로 들어가는데 무슨 영문인지 최 주사가 쓰레기 하나 없는 운동장을 빡빡 쓸고 있었습니다. "더운데 좀 쉬었다 하시지요? 쓸어낼 것도 없구먼" 하고 말을 건넸더니 돌아보지도 않고 "이렇게! 이렇게! 고향집 안마당 한 번 쓸어보고 싶은 기래. 어릴 적 오마니 부르며 뛰놀던 그 골목길 한 번 쓸어 보고 싶은 기래" 하며 계속 빗자루질을 해대고 있었습니다. 이마에서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을 연신 훔치며 주사님이 쓸어 대던 운동장, 빗자루 자국마다 햇살이 하얗게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이 어수선하고 뒤숭숭하던 봄날 내내, 최 주사님의 안부가 참 궁금했습니다. 알 만한 몇 사람에게 전화를 넣어 봐도 모두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분이 눈물처럼 뚝뚝 흘리던 그 외로움, 그 서러움, 그 간절함은 아직도 이승의 어디에선가 생것으로 맨땅에 굴러다니고 있겠지요.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의 아픔을 달래주지 못하는,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는 세월이 참으로 야속합니다. 이런 눈물을 재생산하려는 세력들이 참으로 밉습니다.
김동국/시인 poetkim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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