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테트리스 게임에서 배운 것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수시로 죽음의 유혹을 느낀다는 어떤 친구와 얘기하다가 테트리스 게임의 추억을 떠올렸다. 나는 오락실이나 게임방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을 때까지도 게임이란 게 무엇인지 왜 사람이 게임에 중독되는지 알지도 못했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그랬던 내가 유일하게 빠져든 게임이 테트리스다.

마감이 급한 원고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웠던 어느 저녁. 부담 없는 놀이로 긴장을 좀 풀고 싶었다. 그때 오래도록 내 컴퓨터에 깔려 있었으나 눈길을 주지 않았던 그 게임을 클릭한 것이다. 규칙이 조금이라도 복잡했으면 금세 포기했을 텐데, 테트리스는 규칙이랄 것도 없이 단순하기 짝이 없는 블록 맞추기였다. 그날부터 나의 '딱 한 판만' 노래가 시작됐다. 테트리스 딱 한 판만 하고 논문 써야지, 딱 한 판만 하고 설거지해야지, 딱 한 판만 하고 머리 감아야지. 하지만 술꾼의 딱 한 잔이 언제 딱 한 잔으로 끝나던가. 가스레인지에 국솥 올려놓고 딱 한 판만 하려다가 솥 태워 먹기 일쑤였다. 예닐곱 달쯤 미쳤었나 보다. 할 일을 산더미 같이 쌓아두고도 딱 한 판, 아이가 뭘 해달라고 보채는데도 딱 한 판을 하는 내가 문득 싫어졌다. 오른팔 어깻죽지부터 검지 손톱까지 일렬로 이어지는 통증도 제법 뻑적지근했다. 그 길로 프로그램을 삭제해 버렸고 지금껏 안 하고 있다.

그 경험 덕분에 가끔 테트리스와 인생을 비교해 버릇한다. 이를테면 우리네 인생도 이래저래 블록을 맞춰나가는 세월인 것이다. 내신, 수능, 면접 등 블록을 맞춰 대학을 가고 외모, 경제력, 성격, 궁합 같은 블록을 맞춰 결혼하고 청약저축, 대출, 교통편, 학군 등 블록을 맞춰 집을 장만하지 않는가. 성공할 때마다 인생의 레벨은 높아진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블록은 더 많이, 더 빠른 속도로 내려온다. 책임은 더 무거워지고 과제는 더 많아지며 욕심은 더 커진다. 'Level Completed!'를 받았을 때 느끼는 행복감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레벨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승급하기 위해 치러야 할 고통은 한정이 없다. 당연히도 레벨과 행복지수는 결코 정비례하지 않는다.

다르게 생긴 블록들을 두루두루 평등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점도 인생과 비슷했다. 완벽한 평등이야 물론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횡적인 평등을 추구하기는 해야 게임을 계속할 수 있으니까. 블록을 일극 혹은 양극으로 쌓으면 어떻게 손 쓸 새도 없이 순식간에 게임이 끝나 버린다. 우리 인생도 꿈, 생계, 건강, 사랑, 가족 등의 블록을 너무 한쪽에 편중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지속 가능하다. 양극화 사회가 위험한 까닭도 여기에 있을 터.

마지막으로 얻은 교훈은, 게임은 게임일 뿐 인생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임이 인생을 갉아먹으면 프로그램 자체를 삭제해 버려야 한다. 직장이든 학교든 공부든 연애든 가족이든 마찬가지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 자체가 오롯이 인생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사랑을 하려거든 목숨 바치고 술 마시고 싶을 때도 한 번쯤은 목숨을 내걸고 마셔보고 무엇을 하더라도 이 한목숨 걸고 하라 선동하는 노래가 있었다. 목숨이 두세 개쯤이면 그래도 되겠지만, '이 한목숨'뿐인 것을 어찌하랴.

그러니 열악한 처우와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못살겠으면 과감히 직장을 때려치우자. 직장을 관두면 무얼 먹고사느냐고? 바로 그거다. 직장에 매인 채로 죽느니 일단 관두고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하는 편이 훨씬 윗길이다. 어떤 아이의 가슴 아픈 유서처럼 '머리가 심장을 갉아먹는데 더 이상 못 버티겠으면', 머리를 정지시키고 심장을 튼튼하게 가꿀 일이다. 말이 쉽지 어떻게 그럭하느냐고? 문제집을 덮고 오월의 산길을 하염없이, 하염없이, 걸어보면 어떨까.

그리고 남편 때문에 죽고 싶은 아내는 남편과 가족 관계를 끊어야 한다. 아이가 불쌍해서 어떡하느냐고? 바로 그거다. 아이 입장에서는 엄마가 죽는 편보다 이혼하는 편이 천만 배 낫다.

제발이지 모두들, 일단, 살고 보자.

박정애/강원대 교수·스토리텔링학과 pja8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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