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배수빈(37)은 "나락으로 떨어져 본 적은 없다"고 했다. "연기를 사랑하는데 일이 없어 2년 동안 쉬었던 게 힘들고 어려웠던 기억"이란다.
6일 개봉한 영화 '마이 라띠마'(감독 유지태)에서 힘겹게, 최저층의 삶을 지탱하는 수영을 연기했으니 당연히 나올 질문에 그의 답은 싱거운 듯했다. 하지만 연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이에게 일할 준비가 돼 있는데 아무도 찾지 않는다는 건 가장 어렵고 힘든 기억임이 틀림없다.
"드라마 '주몽' 끝나고 나서였어요. 2년 동안 집에서 넋 놓고 있었다니까요. '내가 지금 뭐 하는 걸까? 왜? 내가 배우라고 할 수 있는 건가?' 정체성이 흔들리던 시기였죠. 하지만 그게 슬럼프라고 할 순 없어요. 그렇게 따지면 전 항상 슬럼프죠. 여러 가지가 저를 일깨우는 원동력일 뿐이에요. '주몽' 전에는 삽질(?)도 많이 한 걸요. 중국에서 맨땅에 헤딩도 해봤고요."(웃음)
★'주몽' 끝내고 일 없어 힘들었던 2년
그는 과거 위기를 발판 삼아 높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주몽' 이후 '바람의 화원' '찬란한 유산' '천사의 유혹' '동이' '49일' 등의 드라마에 출연했고, 영화 '백자의 사람: 조선의 흙이 되다' '26년' 등을 통해 존재감을 과시했다.
"저는 제가 어딘가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 나름의 도전과 실험도 많이 했죠. 저는 어떤 역할이든 할 수 있다고 봐요. 그게 악의 끝이나, 타락의 끝일 수도 있는 것이고요. 물론 꼭 그 상황이 돼야 그 인물 연기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마이 라띠마'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는 가진 것도 기댈 곳도 없이 세상에 홀로 버려진 남자 수영(배수빈)과 돌아갈 곳도 머무를 곳도 없이 세상에 고립된 이주여성 마이 라띠마(박지수)가 절망의 끝에서 만나 펼치는 희망과 배신의 변주곡을 담아낸 작품이다.
배수빈은 수영을 연기하기 위해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노숙자들을 눈여겨봤다. 사람에 관심이 많다는 그는 "'이들은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쳤을까? 왜 저런 삶을 살 수밖에 없을까?'라는 관찰자의 시점으로 바라봤다"며 "이들도 이런 삶을 원치 않았다는 걸 알게 됐고, 여러 가지 사회 제도적인 문제들을 보게 됐다. 또 이들 중에는 욕심이 과한 사람도 있었다"고 짚었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극 중 수영의 처지를 떠올리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의 사람들이었고, 배수빈의 간접 경험은 영화 속에 녹아났다. 흔들리는 눈빛의 그는 어쩔 수 없는 선택들을 하고, 어긋나 있다는 것을 알지만 때는 이미 늦어 버린 뒤다.
배수빈의 노력은 당연했다. 사실 그는 유지태 감독이 처음 생각한 주인공은 아니었다. 애초 유 감독은 어촌 마을의 19세 남자 이야기를 생각했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를 통해 유 감독과 인연을 맺은 배수빈은 "시나리오 좀 모니터해 달라"는 말에 '마이 라띠마'를 접했고, 마음이 동한 배수빈은 "출연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유 감독은 시나리오를 고쳐 나이와 상황 등을 조정했고, 배수빈은 자신의 개런티까지 투자했다. 한마디로 제대로 꽂혀 참여하게 됐다.
"수영의 이야기가 와 닿았죠. 사람과의 관계를 통한 아픔에서 사람이 성숙한다고 생각해요. 자기를 내려놓을 줄 알고, 또 그렇게 살다 보면 소통을 하게 되는 거죠. 제가 수영처럼 굴곡진 인생을 살진 않았지만 '사람이 다 비슷하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아픔이죠. 유지태 감독과 제가 생각하는 방향이 같더라고요. '이 사람과는 어떤 일을 도모해도 되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웃음)
연기 극찬을 받는 태국 이주여성을 연기한 신예 박지수의 발탁에도 유 감독과 함께 참여했다. 배수빈은 "박지수가 오디션 때 외국 전통 의상을 입고 들어왔다"며 "어색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시작하더라. 열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추어올렸다. "나는 인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지수가 주변과 호흡을 잘 맞췄다"며 "주목해야 할 만한 배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짐작했다.
이들의 노력과 열정이 통한 걸까? '마이 라띠마'는 지난 3월 제15회 도빌아시아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호평받았다. 여러 제약 때문에 개봉을 늦게 하게 됐지만, 기대하는 관객들이 꽤 많다. 이미 외국에서는 인정을 받았다. 배수빈은 관객의 반응을 기대하면서도,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결혼소식보다 영화로 주목 받고 싶어
"관객을 만나는 건 정말 기대돼요. 하지만 연극 '광해'에 참여하고 있어서 영화제에 가지 못한 게 무척 아쉬워요. 해외영화제에 참석해 본 적이 없는데, 상까지 받았으니 가야 했는데…. 정말 안타깝다니까요."(웃음)
영화 개봉에 앞서 배수빈의 결혼 소식이 전해져 팬들의 관심을 받았다. 배수빈은 8세 연하 예비신부를 향한 지나친 관심은 정중히 사양했다. 적절한 정도만 공개한 그는 결혼해도 "똑같이 연기활동을 할 것"이라며 "관심을 당연히 받을 수밖에 없지만, 내 결혼이 거창한 것은 아니다. '마이 라띠마'는 좋은 영화니 영화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는 평소처럼 성실히 노력하고 살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삶을 살면서 성실해야 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밥을 먹을 수 있고, 가족이든 뭐든 지킬 수 있는 거예요. 성실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으면 뭐든 지킬 수 없는 게 당연하죠. 전 제가 일해서 번 돈으로 먹고사는 게 좋아요. 욕심을 내고 싶지 않아요. 어떤 일을 하든 반대편 누군가는 상처를 받겠지만, 서로가 모두 좋은 일을 하고 싶어요. 제가 가진 건 몸과 목소리, 눈빛뿐이지만 이것들을 이용해 좋은 방향을 찾아가려고요."(웃음)
진현철(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댓글 많은 뉴스
대통령실, 추미애 '대법원장 사퇴 요구'에 "원칙적 공감"
지방 공항 사업 곳곳서 난관…다시 드리운 '탈원전' 그림자까지
李대통령 지지율 54.5%…'정치 혼란'에 1.5%p 하락
정동영 "'탈북민' 명칭변경 검토…어감 나빠 탈북민들도 싫어해"
교착 빠진 한미 관세 협상…도요타보다 비싸지는 현대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