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상학의 시와 함께] 수평선에의 초대

# 수평선에의 초대 -박용하(1963~)

삶이란 게, 단 한 번 지구 위로 받은 초대라는 생각을 문득 합니다. 달빛이 고요를 항해하는 바다에서는 특히 더합니다. 아직까지 자연보다 더 훌륭한 책을 본 적은 없습니다. 지구는 우주의 오아시스입니다. 바다는 지구의 오아시스입니다. 오늘도 인류는 파아란 별 위에서 타락했습니다. 별 촘촘 싹트는 대양에서, 삶이란 게 지구 위로 초대받은 축제라는 생각을 밑도 끝도 없이 하곤 합니다.

-시집 『영혼의 북쪽』(문학과지성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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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어느 날 나는 인도양에 있었다. 하늘과 바다로 양분된 세상의 한가운데를 천천히 관통하고 있었다. 거대한 컨테이너선으로 일주일을 달려도 늘 하늘과 바다의 한가운데에 놓인 듯했다. 누가 지구라 했는가. 내 눈엔 수구(水球)였다. 끝도 없는 우주에 떠있는 거대한 물 한 방울이 내가 지나는 세상의 전부였다. 수평선은 한눈에 봐도 완만한 곡선이었다. 수곡선(水曲線)이라고나 할까. 마치 거대한 공 위에 서있는 느낌이었다. 물은 또 얼마나 푸른가. 사파이어를 녹여 인도양을 채우면 그런 빛깔이 나올까.

"오늘도 인류는 파아란 별 위에서 타락했"다고 시인은 말한다. 나도 인도양 위에서 수도 없이 그런 생각을 했다. 벌레 한 마리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출가를 결심한 성인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 절대 신성 공간 어느 한 곳도 침을 뱉어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밤이면 하늘의 별들과 바다에 내린 별들이 벌이는 한바탕 빛의 축제, 그 안에선 "삶이란 게 지구 위로 초대받은 축제"가 맞다. 그런데 어찌하여 문명 속으로 복귀하면 까맣게 잊고 마는지. 아무데나 침을 탁탁 뱉게 되는지.

우주의 변화에 마음을 기울이고 받아 적으면 이런 시들이 될 것이다. 박용하 시인은 우주 자연의 스러움에, 그 흐름에 영혼과 몸을 맡기고 일렁이며 시를 읊조린다. 인도양에 떠있는 나뭇잎 배를 생각해 본다.

안상학<시인 artan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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