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단체장에 대한 정당공천 폐지는 되돌릴 수 없는 대세다. 정치권에서 부정적인 기류가 흐르고 있지만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여론이 압도적이다.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국민이 주인이다. 국민이 잘못됐다는 전제는 있을 수 없다. 국민여론을 외면할 수 있는 정당은 없다."
황주홍(61'전남 장흥'강진'영암) 민주당 의원은 시장'군수 등 기초단체장에 대한 정당공천 폐지 운동의 맨 앞에 서 있다.
전남 강진군수를 세 번이나 지낸 황 의원은 3선 군수에 출마한 지난 2010년 선거 때 아예 정당공천을 받지 않겠다며 민주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기도 했다. 민주당의 텃밭인 전남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지 않고 '무소속'으로 출마해 민주당 후보와 맞붙은 것은 무모한 도전으로 비치기도 했지만, 그는 정당공천의 문제점과 정면에서 맞서겠다며 '골리앗' 같은 민주당과 맞선 '다윗'을 자처한 것이다.
19대 국회에 진입하는 데 성공한 '초선' 황 의원은 정당공천 폐지에 대한 '초심'을 잊지 않고 당내와 국회에서 정당공천 폐지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천권을 쥔 '갑(甲)'의 입장이 됐음에도 정당공천 폐지가 입법화되지 않더라도 뜻을 같이하는 의원들과 함께 공천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가 국회의원이 된 후 민감한 정치적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는 '초선일지'도 화제를 낳고 있다. 지난해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검찰 출두를 거부하자 당당하게 출두해서 조사를 받으라고 요구했고 당시 이해찬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의 2선 후퇴를 강력하게 촉구하기도 했다. 대선이 끝난 후에는 문재인 의원의 국회의원직 사퇴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적도 있다. 친노세력에 대한 '돌직구'였다.
황 의원은 지난 5월 열린 전당대회에 최고위원 후보로 나섰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초선의 최고위원 출마에 대한 견제도 있었을 것이고 개인적으로 부덕하기도 했을 것이다.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선거였다. 그때 (당 지도부에) 진입할 수 있었더라면 국민대중노선을 견지하고 당의 중심을 잡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국회 입성은 늦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설립한 '아태평화재단' 연구실장으로 1993년 정치권과 인연을 맺었다는 점에서 호남정치의 맥을 잇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정당공천이 폐지돼야 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정당정치의 구현이 기초단위 풀뿌리 자치 행정 차원에서 이뤄진다는 교과서적인 주장에 대해 생각을 달리 한다. 책임정치는 정당 중심이다. 국회-중앙당-도당-지구당-당원으로 이어지는 채널이다. 정치와 행정은 노선 자체가 채널이 다르다. 국회-중앙당-도당으로 내려오다가 왜 느닷없이 시'군'구청으로 들어가나. 이것은 정치의 침투, 정치가 자치를 간섭하는 것이다. 정치에는 진보와 보수 등 이데올로기가 있지만 자치행정에는 진보와 보수가 없다.
정당공천제는 크게 지역주민과 지역발전을 위해 써야 할 돈과 시간, 충성심을 왜곡시킨다. 통상적인 정당활동 관리에 돈이 많이 들어간다. 지구당위원장 당원보고대회한다고 행차하면 밥값 술값이 들어가고 전당대회 같은 데도 다녀야 한다. 경선하는 데도 돈이 들어간다. 시장, 군수는 당비도 매달 50만원씩 낸다. 이런 돈을 어디서 마련하겠나.
주민을 섬겨야 하는데 중앙당과 국회의원에 충성해야 한다. 국민들이 속속들이 폐해를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70% 이상이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제대로 설명하면 99.9%의 국민이 폐지에 찬성할 것이다. 정당공천제는 악법이다."
-민주당이 정당공천 폐지를 당론으로 정했다. 그럼에도 국회에서는 부정적인 기류가 흐르고 있다. 실제 통과 전망은?
"국회의원의 절대다수는 정당공천 유지를 선호하고 있다. 그러나 즉각 폐지를 요구하는 여론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통과 가능성이 높다. 퇴로가 없다. 누가 국민 여론에 먼저 부응하는가 하는 문제일 뿐이다. 지난 4'24 재보선에 새누리당은 무공천을 했고 민주당은 공천을 했다. 민주당은 그때 여론을 등졌고 대선 총선에서 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재인 후보나 박근혜 대통령 때문에 진 것이 아니다. 민주당 스스로 못한 거다. 그런 점에서 정당공천 폐지는 현재로서는 비교우위에 있다. 이 시점에서 되돌릴 수가 없다. 물론 국회에서 반대 표가 있을 수도 있고 본회의장에서도 저항이 있겠지만 통과될 것이다. 이미 정당공천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다."
-세 차례 군수 선거를 치르면서 정당공천의 폐해를 느꼈기 때문인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도 공천의 폐해를 느꼈고, 동료 시장, 군수를 통해서도 많은 사례를 들었다. 전국 시장'군수협의회가 만장일치로 정당공천 폐지를 결의했다. 당시 전국투쟁위원장을 맡았다. 이뿐만 아니라 시'군'구의회 의장협의회도 만장일치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주권자인 국민들뿐만 아니라 지난 대선에 나선 유력 후보들이 한목소리로 정당공천 폐지를 공약했다. 국민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줘야 한다."
-정당공천을 폐지할 경우, 현역 단체장의 프리미엄이 강하고 정치 신인과 여성에게 불리하다는 우려가 있다. 대안이 있는가.
"정당공천제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은 물론 정당성과 타당성 등의 양면성이 있다. 정치에 유일한 답은 없다. 복수의 답이 있다. 다만 정당공천 폐지에 대한 우려는 부풀려진 기우라고 생각한다. 우선 교육감 선거와, 농'축'수협 조합장 선거를 봐도 그렇다.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이미 단체장에 대해 정당공천을 하지 않고 있다. 경험을 과장해서 논리를 정당화시키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찬반위원회(위원장 김태일 교수)를 통해 20%의 여성명부제 도입을 제안했다.
여성명부제는 의석의 20%를 여성에게 할당해주고 그 안에서 싸우는 것이다. 지역구에도 출마할 수 있다. 역기능이 나올 수도 있다. 국회에서 차분하게 논의할 것이다. 진선진미한 제도는 없다."
-정치와 자치는 구분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기초단체장뿐 아니라 광역단체장도 마찬가지 아닌가.
"개인적으로 광역단위에서도 정당공천은 폐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문제까지 제기하면 초점을 흐릴 수 있어서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광역단체장은 예산 규모와 지역 면적 등이 훨씬 크다. 정당이 그것조차 (정당공천을) 못하게 한다면 정당활동의 자유(헌법 제8조)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시각이 강하다. 그렇게 되면 정당이 중앙에서만 활동하는 것이 되지 않느냐."
-지방정당(local party) 도입 필요성도 제기했다.
"우리 정치는 지역에 기반을 둔 양대 정당이 이끌고 있다. 약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독점체제다. 호남의 경우 국회의원 공천이 과연 이상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진행됐느냐 하면 아쉬운 점이 많다. 기초와 광역단위도 마찬가지다. 이런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지방정당이다. 우리 헌법에서는 정당 설립을 하려면 5개 이상의 시도에 지부를 설치해야 하기 때문에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지방정당이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지방정당의 활동이 보장되면 달라질 것이다. 이를테면 대구지역 시민연대 같은 형태의 정당설립도 가능하다. 국민여론이 극단적으로 충돌하고 양극화되는 문제도 개선될 것이다.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영호남 같은 특정 지역에서, 독과점적인 양대 정당의 장악력을 해체시켜야 한다. 그럴 가치가 있다."
-민주당의 내부 문제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의 미래는 무엇인가.
"조심스러운 문제다. 김한길 대표 체제의 새 지도부가 지난 5월 출범해서 여러 가지 길을 모색하고 있다. 나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예전에 비해 달라진 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비판도 잘 알고 있다.
(이 대목에서 황 의원은 말을 멈췄다가 상당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금 민주당의 문제는 구조적인 것이어서 풀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민주당이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현재 상황을 단기간에 극복할 수가 없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한다. 특히 민주당의 지휘부, 사실상 127명의 국회의원이 끌고 가는 민주당 지휘부의 면면을 들여다볼 때 개인적으로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국민 여론과 127명 의원의 생각이 늘 불일치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장외투쟁하겠다고 하는데 30% 국민만 지지한다. 그들이 우리 지지층이다. 그것은 뺄셈의 정치다.
'야당은 장외투쟁을 해야 한다'는 의식구조와 가치관 같은 것이 민주당을 국민 일반의 기대와 판단'의사와 동떨어지게 만들고 있다. 제주 해군기지와 귀태 발언 등은 30% 정도의 지지자들에게 속시원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머지는 '저런 놈들한테 정권을 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여야 관계는 제로섬일 수 있지만 국민과의 관계는 제로섬이 아니다. 박 대통령과 황우여 대표 등 새누리당을 보고 정치해서는 안 된다. 국민이 원하는 바대로 움직이고 국민에게 충성해야 한다."
-앞으로 지향하고 싶은 정치는.
"국회의원은 공직이다. 민주당 의원으로서 고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군수 시절에도 그랬다. 고생하려고 한다. 일하고 공부하고 대화하고 입법과 상임위원회 활동을 통해 정치 발전에 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국회의원이 '헌법기관 벼슬아치'가 돼서는 안 된다. 서비스 기관, 공익기관이라는 책임감을 갖고 스스로를 연소시키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정치다."
이지현기자 everyda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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