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로 의료선교를 떠난 제자가 메일을 보내왔다. 초라한 병상에 앉아있는 환자들을 가정의학과 의사인 그의 부인이 진찰하고 신경외과 의사인 그가 어린 아이도 끼어 있는 환자 가족들과 함께 진지하게 지켜보고 있는 사진도 같이 왔다.
사진을 보니 문득 어렸을 적 기억이 떠오른다. 그 시절 고향에는 의사가 없었다. 그렇다고 병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자주 아팠다. 툭하면 배를 끌어안고 방바닥에 뒹굴었다. 나도 자주 아팠다. 특히 설사를 자주 했다. 열이 나고 탈수 증상을 보이며 늘어져 누워 있곤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형이, 나는 아버지가 등에 업고, 어머니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하는 곳으로, 나는 한지(限地) 의사가 있는 곳으로 한밤중에 달려가곤 했다. 그렇게 갔다 오면 어머니도, 나도 다음 날 깨끗하게 털고 일어났다. 그때 치료해준 분들이 얼마나 신비스럽고 존경스러웠던지….
'학장님, 저희 가족은 모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더구나 아이들이 무척 잘 적응을 해서 너무나 고맙습니다. 요즘 '브레인'이란 드라마를 인터넷으로 아내와 같이 보면서 학장님 생각을 많이 했답니다. 항상 환자들에게 열심이시고 수술도 너무나 잘하신 학장님. 존경합니다.' '지금 제가 가고 있는 길은 마치 어둠 속에서 하나님이 비쳐 주는 작은 빛을 보고 따라가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가끔은 제가 제대로 가고 있는가 하는 두려움도 있답니다. 그렇지만 현재의 삶에 항상 감사가 존재하고 마음에 평강이 있으니 나중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후회스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3년 전인가 갑자기 제자가 연구실로 찾아왔다. 캄보디아로 의료선교를 가겠다고 했다. "동료와 같이하던 병원은 어떻게 하고? 부모님에게는 말씀드렸느냐?" "병원은 동료가 맡기로 했고 부모님은 설득해야죠." 그렇게 떠났던 그다.
메일을 받고 다시 일 년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의 부친이 돌아가셨다는 부음(訃音)을 들었다. 문상을 한 후 장례식장을 나오는 데 그가 밖에까지 따라 나와서 울었다. "야 이놈아, 울려면 문상할 때 울어야지 왜 여기서 우는 거냐?"
그렇다. 의료선교도 땅 위의 길과 같다. 잡초만 덮여 있는 곳을 한 사람이 가다가 많은 사람이 가면 길이 되는 것이다. 우리 병원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 길을 따라왔던 사람들이 지금 또 새로운 땅에 길을 만들고 있다.
제자가 보내온 사진을 다시 본다. 그 속 아이가 과거의 나처럼 보인다. 그가 나중에 의사가 돼 내가 어릴 적 나를 치료해 주었던 분들에게 보냈던 것과 똑같은 감사함과 존경심을 내 제자에게 보낼 것만 같다.
임만빈 계명대 동산병원 신경외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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