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매카시의 진실도 모르면서

기자는 이석기 의원이 지난해 국회 진입에 성공한 뒤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의 3대 세습을 두고 "송두율 교수의 내재적 접근법에 동의하는 편"이라고 밝힌 것과 관련해 본지(2012년 5월 31일 자)에 '내재적으로 접근해 무엇을 알아냈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기자는 여기서 "이 땅의 종북주의자는 지적으로 매우 게으르다"고 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눈으로 본 북한이 진짜 북한이란 요설(妖說)을 신주처럼 떠받드는 지력(知力)의 저열(低劣)함을 지적했던 것이다.

이런 지적 지체장애는 종북주의자만 갖고 있는 게 아닌 모양이다. '진보'깨나 한다는 인사마다 지금 대한민국이 빨갱이 사냥터가 되고 있다는 듯이 '매카시즘'을 입에 달고 있으니 그렇다. 특히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연이은 매카시즘 발언은 더 실망스럽다. 매카시즘의 '매' 자도 모르는 무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그렇다.

주지하다시피 매카시즘의 통례적 의미는 '빨갱이 덮어씌우기'이다. 이 단어는 워싱턴 포스트지의 카투니스트 허버트 L. 블록이 처음 만들었다. 그러나 대중화시킨 사람은 한반도를 소련에 넘겨주자고 한 역사학자 오언 래티모어다.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에 의해 '소련 스파이망(網)의 대장'이란 공격을 받은 뒤 펴낸 '중상모략에 의한 시련'이란 저서에서 자신에 대한 매카시의 공격을 이렇게 표현했던 것이다. 매카시의 공격이 말도 안 되는 마녀사냥이란 주장이었는데 미 방첩 기관이 소련의 암호 교신을 해독한 기밀 작전인 '베노나 프로젝트'(Venona Project) 문서가 1995년에 공개되면서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났다.

그뿐만 아니었다. 루스벨트 행정부 때 국무부 차관보 앨저 히스, 국제통화기금(IMF) 창설을 주도한 재무부 차관보 해리 덱스터 화이트, 루스벨트 보좌역 해리 홉킨스, CIA 전신인 OSS(전략사무국) 참모장 던컨 리 등도 소련 간첩임이 확인됐다. 모두 매카시가 소련 간첩이라고 찍었던 인물이다. 원자폭탄 기술을 소련에 넘겨준 혐의로 사형당한 뒤 '좌빨'들이 매카시즘의 대표적인 희생양으로 선전해온 로젠버그 부부 역시 소련 간첩이 맞았다.

이들의 '간첩질'로 미국의 2차 대전 후 세계 질서 구상은 큰 차질을 빚었다. 얄타회담에서 소련이 미국의 협상 전략을 손금 보듯 알고 있었고 그 결과 회담이 소련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결말지어졌던 배경에는 앨저 히스가 있었다. 얼마나 고마웠던지 앨저 히스가 소련을 방문했을 때 당시 소련 외상 안드레이 비신스키가 몰래 찾아와 감사의 인사까지 했다. 화이트는 미군이 독일 점령지에서 화폐로 쓸 군표(軍票)를 인쇄할 동판을 소련에 넘겨 미국 정부에 2억 5천만 달러에 달하는 피해를 입혔으며, 중국 국공내전 때 미국 정부가 장제스에게 지원하려던 2억 달러를 뚜렷한 이유 없이 집행하지 않아 중국 공산화를 앞당긴 데 일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가장 큰 희생자는 대한민국이다. 국무장관 딘 애치슨이 미국의 극동 방위선에서 한국과 타이완을 제외한 결과 우리는 민족상잔의 참화를 겪어야 했다. 당시 애치슨은 한반도를 소련에 넘겨주자고 했던 오언 래티모어를 깊이 신임하고 있었다. '애치슨 라인'이 그냥 그어진 게 아니라고 의심해볼 만하지 않은가. 결론이 뭐냐고? 매카시는 있지도 않은 빨갱이를 만들어내지는 않았다는 거다. 매카시의 잘못이라면 '폭로'를 통해 정치적 출세의 계단을 급히 오르려고 했던 것이었지 적어도 '흰 사람'을 빨갛다고 하지는 않았다.

지금 민주당의 '매카시즘 타령'은 누구도 민주당을 빨갛다고 하지 않음에도 "왜 우리를 빨갱이로 모느냐"며 팔뚝춤을 추는 꼴이다.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빨갱이'임을 고백하라는 게 아니라 '묻지 마' 야권연대로 이석기 부류의 종북 쓰레기들을 국회로 진출시킨 책임을 통감하라는 것이다. 이런 요구는 민주당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김영환 의원은 "연대와 단일화에 목을 맨 민주당에도 책임이 있다"고 했고 조경태 최고위원도 같은 취지의 반성론을 제기했다. 그러나 메아리 없는 고독한 외침이고 조 최고위원은 왕따가 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는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매카시즘 뒤로 숨는다고 종북 쓰레기들과 손잡은 사실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매카시즘 타령은 매카시즘의 진실을 모르는 무지의 폭로이자 책임을 호도하는 사술(詐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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