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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기 편해져 당당해진 '솔로부대'

1인 가구 작년 소비지출 50조…기업들, 의·식·주 '맞춤 마케팅'

싱글족인 한 여성이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슈 등 개 두 마리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매일신문 DB.
싱글족인 한 여성이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슈 등 개 두 마리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매일신문 DB.
나홀로족을 위한
나홀로족을 위한 '영화를 봅시다' 이벤트.
1인 가구가 늘어나자 가전업계에서는 속속 미니맥스 가전을 선보이고 있다.
1인 가구가 늘어나자 가전업계에서는 속속 미니맥스 가전을 선보이고 있다.
중구 동성로에 있는 1인 전용식당
중구 동성로에 있는 1인 전용식당 '콤마'. 1인 좌석에다 1인분 상품 개발 등으로 나홀로 손님을 만족시키고 있다.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영화를 보고, 나 혼자 노래하고, 오늘도 나 혼자…♬♬'.

걸그룹 씨스타의 노래 '나 혼자'의 가사처럼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영화를 보고, 혼자서 노래를 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혼자 살기 딱 좋은 세상이다. 나홀로족을 위한 영화'드라마가 넘쳐나고 1인용 주택'가전'가구'음식에 1인 식당'카페'노래방'호텔까지 생겨났다. '왜 결혼을 안 하느냐'는 따가운 시선도 사라졌다. 친구들의 부러운 눈길이 오히려 부담스럽다.

◆혼자 놀기의 진수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김희진(가명'여) 씨. 37세 싱글이다. 사회에선 미스 김, 직장에선 김 과장으로 불린다. 고향은 청도. 가족과 떨어져 산 지 10년이 넘었다. 대구 중구 삼덕교회 인근의 한 오피스텔에 혼자 산다. 원룸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곳이다. 그가 쓰는 방은 20㎡ 정도로 작다. 그래도 없는 게 없다. 침대와 책상, 드럼세탁기, 냉장고가 공간에 꼭 맞게 자리하고 있다. 거실 한쪽 벽면에는 커다란 나무 패널을 세워 각종 전시회 포스터와 엽서가 한 가득이다. 좁은 거실을 둘로 나눠 한쪽에는 AV(오디오'비디오)룸까지 갖춰놨다. 대다수 사람에겐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공간'인 집이 김 씨에게는 '카페'고 '영화관'이다. 이 모든 혜택을 누리는 데 드는 비용은 계약 당시 낸 보증금 300만원에 다달이 내는 40만원이 전부다.

혼자 살지만 혼자 살지 않는다. 김 씨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카톡 등을 이용해 친구들의 근황을 듣고 소식을 전한다.

돌아온 싱글인 권정희(가명'42) 씨. 혼자 산 지 10년이 넘었다. 드라마 마니아인 그는 요즘 신이 났다.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드라마'영화가 넘쳐나 심심할 겨를이 없다. 밥때가 돼도 걱정이 없다. 식사 때면 주로 동성로에 있는 '1인 식당'을 이용한다. 가끔 한 번씩 '오늘은 정말 혼자 밥 먹기 싫다'는 생각이 들 때면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이 함께한다.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 때에는 수성구까지 원정을 나갔다. 자주 찾는 와인바에서 즐거운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냈다.

신정연휴 때는 여행사의 당일치기 관광상품을 이용해 '나홀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지난해에는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하는 '로맨틱 여행'에 참가하기도 했다. 권 씨는 대학생 때부터 연애를 했지만 결혼 생각은 없다. "결혼한 걸 후회하는 친구보다 행복하게 산다"고 자부한다. 권 씨의 직장 동료인 이종현(가명'48) 씨는 결혼을 아예 포기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취미를 즐길 수만 있다면 굳이 가족은 필요 없다는 생각이다. 솔직히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일상이 바쁘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낄 겨를도 없단다. "혼자 사는 게 편합니다. 노후 대책도 마련하고 있어서 지금처럼만 살면 나이 들어도 재미있게 잘 살 것 같아요."

◆나홀로족을 위한 드라마'영화

혼자 살기 딱 좋은 세상이다. 싱글족들을 위한, 또는 이들이 주인공인 드라마'영화가 넘쳐난다.

대한민국 전체 가구의 약 4분의 1에 달하는 혼자 사는 사람들(2012년 기준, 454만)의 마음을 확실히 잡는가 하면 혼자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의 기쁨을 선사하고 있다.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는 혼자 살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기러기 아빠 이성재'김태원에 미혼남인 데프콘'서인국'노홍철 등 혼자 사는 남자들의 일상을 공개하고 있다.

이들은 무지개라 명명된 1인 가구 모임을 만들었고 가끔 모여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눈다. 호화롭고 넓은 집이 아니다. 원룸에 거주하거나 자취생활을 하는 출연진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의 모습은 남부럽지 않다. 1인 가족으로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케이블채널 tvN은 최근 1인 가구를 소재로 한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를 새롭게 선보였다. 이 드라마의 작가진은 모두 '나홀로족'. 작가들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혼자 살면서 겪은 외로움과 애환, 혼자 사는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 1인 가구의 먹방들을 실감 나게 그렸다.

극장가도 나홀로 관객들이 장악했다. 가족단위나 연인끼리 영화를 보는 대신 혼자 영화를 보는 이들이 늘고 있다. 최근 한 영화예매사이트가 '연휴에 누구와 영화를 볼 것인가'를 묻는 설문에서 '혼자'라고 답한 사람이 23%로 나타났다. '연인(8%)' '친구(6%)'보다 3배가량 많은 수치다. 실제로 지난 추석 연휴에는 명절 분위기와 상반되는 공포영화 '컨저링'이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고 '숨바꼭질' 등의 영화가 인기를 끌었다. 영화관도 나홀로 관객 공략에 나섰다. 멀티플렉스 메가박스는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 싱글족을 위한 '솔로관'을 개관했다. 솔로 관객에게 영화와 스낵, 커플 매칭 기회를 제공했다. CGV도 이달 12일까지 나홀로족을 위해 tvN의 1인 가구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와 손잡고 이색 이벤트 'CGV 힐링 프로젝트 4탄, 나를 사랑하자' 이벤트를 열어 나홀로 관객들에게 식사 등 완벽한 맞춤형 힐링 혜택을 제공했다.

◆나홀로족을 위한 식사

혼자서 밥 먹는 것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나홀로족들을 위한 1인 식당이 많이 생겨서다. 대구에는 동성로 등지에 1인 손님을 위한 식당들이 우후죽순 문을 열었다. 1인용 테이블을 마련하고 '나홀로 손님'을 받는 전문식당이 몇 년 사이에 10여 곳 정도 생겼다. 카페, 레스토랑, 술집 등 다른 서비스 업종에서도 1인 상품(메뉴) 개발과 1인 좌석 배치에 나서며 '나홀로 손님' 공략에 나서고 있다. 배달업계에도 '1인분' 바람이 불고 있다. 그동안 '2인분 이상만 배달 가능'이라는 원칙을 고수했던 식당'중국집 등이 '1인분 배달'에도 나서고 있다.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삼성반점의 임태용 사장은 "음식을 주문하는 손님 5명 중 1명은 1인분 배달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1인분 배달을 요구하는 손님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이 같은 손님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어 1인분 배달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1인 여행객도 증가 추세다. 자유투어 대구지점 이상훈 차장은 "최근 해외여행 예약 현황을 분석했더니 1인 여행객이 30%를 웃돌고 있다. 이 같은 추세에 맞춰 다양한 여행 프로그램 개발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도 소형 포장과 1인 가구를 위한 맞춤 제품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가구나 가전제품도 예전보다 한층 세심하게 1인 가구를 배려하고 있다. 식품업계에서는 소포장과 편의성'고품질 위주의 전략으로 1인 소비층을 겨냥한 마케팅이 쏟아지고 있다. 맞춤 서비스도 등장했다. 보안과 안전을 결합한 가정용 특화 방범 서비스는 물론 세탁'청소'쇼핑 대행 등 생활지원 서비스도 등장했다. 지난해 삼성경제연구소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1인 가구의 연간 소비지출은 50조원에 달할 정도다.

오동욱 대구경북연구원 사회문화연구팀장은 "소비시장이 싱글이냐 아니냐로 크게 양분화되고 있다. 1인 가구의 지출은 오락'문화서비스, 가정용품과 가사서비스업 등에서 4인 가구보다 훨씬 빠르게 늘고 있다. 앞으로도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되면서 나홀로 족들을 위한 관련 산업이 급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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