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백두대간 협곡열차 타고 '꽁꽁' 겨울 속으로~

승부역~양원역~분천역 트레킹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다. 한동안 따뜻한 겨울이 계속되다 보니 '진짜 겨울'이 그리워졌다. 다행히 대구경북지역에 제대로 된 겨울을 품고 있는 곳이 있었다. 바로 경북 봉화. 특히 지난해 11월 첫선을 보인 승부역~양원역 간 '낙동강 세평 하늘길'과 양원역~분천역 간 트레킹 코스는 채 녹지 않은 눈과 꽁꽁 언 얼음 아래로 흐르는 낙동강 상류의 맑은 강물 소리를 벗 삼아 겨울을 느끼며 걸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아이젠이 필요할지도 몰라요"

오전 10시 V-트레인(백두대간 협곡열차)이 봉화 소천면 분천역에서 출발했다. 강원도 태백시 철암역까지 달리는 V-트레인을 타고 비동승강장, 양원역, 승부역을 지나는 동안 철길 옆으로 흐르는 낙동강과 기암괴석이 만들어내는 절경에 관광객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분천역을 출발한 V-트레인은 30분을 달려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이라는 승부역에 도착했다.

이 역에서 정차하는 시간은 10분. 관광객들은 이 시간 동안 기차에서 내려 승부역 시비 옆에서 사진을 찍거나 주변 경치를 즐긴다. 관광객들을 뒤로하고 양원역으로 향하는 '낙동강 세평 하늘길'로 향한다.

차가운 강바람과 꽁꽁 언 강물이 '진짜 겨울'임을 실감케 한다. 군데군데 빙판길을 조심조심 디디니 승부역까지 가는 기차에 동승했던 코레일 직원의 충고가 떠오른다. "최근에 눈이 많이 오지 않아서 괜찮기는 하겠지만, 다니다 보면 몇몇 구간은 아이젠이 필요한 곳도 있어서 조심하셔야 돼요."

빙판길을 겨우 통과하고나서 뒤를 돌아보니 채 눈이 녹지 않은 산과 얼어붙은 낙동강 상류, 그리고 드문드문 나 있는 갈대가 제법 멋있는 겨울 풍경이다.

한 시간쯤 걸으니 다시 나타나는 철길. 산 옆으로 난 철길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기차의 모습을 보는 것도 장관이다.

◆양원역에서 벌어지는 10분간의 진풍경

아직 채 녹지 않은 눈을 밟으며 산길을 통과해 20분 정도 더 걸으니 첫 번째 도착지인 양원역이 나타났다. 이 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역'으로 불린다.

그도 그럴 것이 '역사'라고는 벽돌로 쌓아 만든 10㎡가 될까 말까 한 슬레이트 지붕 건물이 전부다. 화장실은 바깥의 간이화장실뿐이다.

이 역의 또 다른 기록 중 하나가 '우리나라 최초의 민자 역사'라는 점이다. 양원역을 세운 사람들은 역 인근의 원곡마을 주민들이다. 1955년 영주~철암 간 영동선이 개통됐을 당시에는 이 역이 없었다. 원곡마을 사람들은 기차를 타려면 산 하나를 넘어서 2시간이 넘는 승부역이나 분천역으로 가야만 했다. 양원역에서 만난 남우분(83) 할머니는 "양원역이 생기기 전에는 승부역에서 걸어서 내려왔니더. 철길 따라 내리가다가 기차를 만나면 피할 데가 없어가 마을 사람들이 많이 다치고 죽고 그랬니더"라고 말했다. 결국 주민들의 끈질긴 요청으로 1988년 원곡마을에 기차가 정차하게 됐고, 이때 주민들이 직접 지은 역이 지금의 양원역이다. 원곡마을이 봉화 쪽 원곡마을, 울진 쪽 원곡마을로 나누어져 있다 보니 역명도 '양쪽 원곡마을'이라는 뜻으로 양원역이라 했다. 양원역에 V-트레인이 서면 앞마당은 한순간에 시끌벅적해진다. V-트레인이 멈춰 있는 시간은 10분. 그 안에 관광객들은 잔치국수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우거나 돼지껍데기 무침을 안주 삼아 막걸리로 목을 축이기도 한다. 그렇게 10분이 지나면 V-트레인은 승부역 또는 분천역을 향해 출발하고, 양원역은 다시 정적이 감돈다.

◆강물 소리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분천역

양원역을 벗어나 마을 쪽으로 이어진 콘크리트길을 조금 걷다 보면 다시 꽁꽁 언 낙동강과 강가의 절벽이 만들어낸 한 폭의 동양화와 같은 경치가 펼쳐진다. 30분쯤 걷다 등장하는 터널 위로 조금 가파른 산길을 지나면 철길 다리가 나온다. 다리 옆 보도를 건너는 동안 기차가 옆으로 지나갔다. 워낙 조용한데다 인적도 드물어 도시였다면 시끄럽다 했을 기적 소리도 반가웠다. 다리를 건너면 비동승강장이 나온다.

비동승강장 아래로 내려와 얼음 밑을 흐르는 강물 소리와 간간이 들리는 기차 소리를 벗 삼아 걸으면 분천역이 나온다. 분천역 앞에는 스위스 깃발과 태극기가 나란히 나부끼고 있다. 또 역사 내부의 커튼 때문인지 우리나라 역이 아닌 유럽의 작은 역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지난해 5월 한·스위스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스위스 체르마트 역과 분천역이 자매결연 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스위스 관광청에서 스위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꾸며 준 것이다. 스위스 체르마트와 승부역 트레킹 코스는 '오직 열차로만 여행이 가능한 청정지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승부역~양원역~분천역을 통과하는 트레킹 코스는 약 4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가는길=주중에는 영주역에서 V-트레인을 탈 수 있지만 금·토요일에는 분천역에서만 출발한다. V-트레인은 분천~철암 구간 편도 8천400원이며 영주역에서 출발하는 경우는 주중에는 8천900원, 주말에는 9천100원이다. 오전 10시와 오후 1시 50분에 분천역에서 V-트레인이 출발하며 승부역까지는 30분이 걸린다.

미리 코레일 홈페이지에 들어가 시간을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Tip=식사는 가급적이면 분천역에서 먹거나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양원역에서는 V-트레인이 설 때 10분 동안만 음식을 팔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식사 해결이 힘들다. 분천역 앞에 관광객들을 위한 식당이 서너 곳 정도 영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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