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인생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과 아픔을 겪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견디고 해결해 나가느냐에 있다. 어려움과 아픔 앞에서 무너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요즘이다. 컴퓨터 수리 전문가 김진철(46) 씨는 어린 시절 많은 어려움과 아픔을 겪었지만 무너지지 않고 굳건히 앞으로 나아가 지금의 위치에 섰다. 김 씨는 "내 인생이 한 번도 불우했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왔는데 인터뷰라니 부끄럽다"고 말했지만 그가 풀어내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는 그리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마음을 친 햇살 속 풍경
김 씨의 부모님은 그가 다섯 살 때부터 따로 살기 시작했다. 가정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는 결국 이혼 후 대구의 한 공장에 노동자들의 밥을 지어주는 일을 했다. 어머니 혼자 삶을 꾸리기도 어려운 형편이었기에 어머니를 따라나서지는 못했다. 게다가 아버지가 새로 모셔온 새어머니와, 김 씨보다 나이가 많았던 새어머니의 자식들은 김 씨를 구박하고 괴롭히기 일쑤였다. 결국 김 씨는 15세가 되던 해 학교를 그만두고 집을 뛰쳐나갔다. 정처 없이 다니다 도착한 곳은 부산이었다.
"당시 부산에 도착해서 버스를 탔는데 종점에 도착하고 돌아다니다 보니 중화요릿집이 하나 있더군요. 들어가서 '오갈 데가 없어서 그러니 일 좀 하게 해달라'고 통사정을 했지요. 그때부터 중화요릿집 배달로 먹고살기 시작했어요."
부산에서 6개월간 일한 뒤 돈이 어느 정도 모이자 김 씨는 다시 대구로 돌아왔다.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대구 시내 중화요릿집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배달 일을 하며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그렇게 배달부로 생활한 지 1년쯤 지난 어느 날, 김 씨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한 날이 찾아왔다.
"식당 안에서 먹고 자고 하던 평범한 날이었어요. 식당 문을 열려고 셔터를 올리는데 햇살이 촤악 안으로 들어오더군요. 그 햇살 속에서 어렴풋하게 교복을 입은 제 나이 또래의 학생들이 지나가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공부하는 걸 좋아하고 학교 가는 걸 좋아했던 내가 왜 이런 모습일까'하는 생각에 뭔가 서러웠어요."
◆검정고시, 입대…숨 가빴던 청년 시절
햇살 속 풍경에 눈물 흘린 그날 이후, 김 씨가 일하던 중화요릿집에서 식사를 하던 한 손님이 김 씨에게 말을 걸었다. 김 씨는 그 손님에게 자신의 고민을 말했고, 그 손님은 '검정고시'를 언급했다. 김 씨는 갑자기 눈이 확 뜨이는 느낌이 들었다.
"'적어도 고등학교는 졸업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한 줄기 빛이 보이는 느낌이었어요. 일이 끝나면 칠성시장 근처에 있는 검정고시학원에서 공부했죠. 정말 그렇게 머릿속에 쏙쏙 들어올 수 없었어요."
중졸 검정고시를 통과한 김 씨는 고졸 검정고시는 아예 일도 그만두고 독서실로 들어가 공부했다. 하루 용돈 1천원 중 독서실 요금 800원을 내고 나면 남는 200원으로 생활하는 시절의 연속이었다. 결국 18살 되던 해 봄에 고졸 검정고시도 통과했다. 대학 진학을 꿈꾸기도 했지만 등록금을 내기 어려운 자신의 처지에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김 씨는 21살 때 해병대에 입대했는데 지원한 이유는 "독서실에서 같이 공부하던 곱상하게 생긴 형이 해병대 출신이란 사실이 멋있게 보여서"였다. 김 씨는 제대하자마자 음료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창고 정리까지 도맡아 해 주는 김 씨의 정성어린 영업 활동 덕분에 매출도 꽤 많이 올랐다. 이후 자동차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일하다 IMF를 맞으며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를 고민하자
회사를 그만두고서 김 씨에게 남은 것은 1억원 가까이 되는 빚뿐이었다. 영업 실적을 올리기 위한 출혈경쟁을 하다 보니 자신의 돈으로 손실을 메운 것이 화근이었다. 다시 막막한 처지가 되자 고물상 운영에 손을 댔다. 운영은 잘 됐지만 인건비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스트레스로 다가왔고, 결국 고물상을 처분했다. 그때 동네 근처에 작은 가게를 구해 컴퓨터 수리점을 차렸다. 자동차회사 영업사원 할 때 사무실 컴퓨터를 담당했던 경험을 살린 것이다.
김 씨의 컴퓨터 수리점이 동네 주민들에게 인정받은 가장 큰 이유는 '정성'이었다. 수리점을 차리고 처음 온 손님의 컴퓨터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나름의 기술로 정성들여 고쳐놓았더니 이 사실이 입소문을 탄 것이다. 그리고 실력을 더 키우기 위해 PC정비사 1급 자격증까지 취득하는 등 노력도 많이 했다.
김 씨는 자신이 겪은 인생의 많은 풍파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 2가지를 들었다.
"첫 번째로 항상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를 고민합니다. '~다워야 한다'는 게 가장 중요하죠. 프로의식을 가지고 '어떻게 해 내겠다'는 목표를 항상 세우고 일합니다. 두 번째로 '함부로 돈을 좇지 않는다'는 겁니다. 제가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인데 돈을 따라 일하면 진심을 담을 수 없어요. 진심과 정성이 첫 번째고 돈은 그다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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