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한글사랑

세계엔 200여 개의 문자가 있다. 그렇지만 이 많은 문자 가운데 누가 만들었는지, 언제 만들었는지, 왜 만들었는지를 알 수 있는 문자는 한글뿐이다.

그만큼 한글은 독창적이다. 한글은 발성기관과 천지인의 모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자음은 입과 혀의 여러 모양을 따와 만들었기 때문에 글자 모양만 보고서도 그 소리를 짐작할 수 있다. 모음은 하늘(')과 땅(ㅡ)과 사람(ㅣ)의 모양을 본떴다. 24개의 문자만 익히면 수없이 많은 낱말을 만들어낼 수 있다. 원리는 간단하지만 오묘한 진리를 다 담아 낸다.

한글의 우수성에 가장 먼저 눈뜬 서양인이 호머 헐버트 박사(1863~1949년)였다. 1886년 왕립 영어학교인 육영공원 교사로 한국 땅을 밟은 헐버트는 한글을 접하고 그 매력에 푹 빠졌다. 1890년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를 만들었고 한글의 기원과 문자의 우수성에 대해 연구했다.

그는 서울 마포 양화진 절두산 성지에 묻혀 있다. 생전 한국과 한글 사랑이 남달랐던 그의 유지에 따른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대표 민요인 아리랑을 서양식 악보로 처음 소개했다. 문경새재 입구엔 '문경새재아리랑비'가 서 있다. "문경새재 물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로 구구절절이 이어지는 문경새재 아리랑이 새겨진 비는 그를 기린 것이다.

정부가 제568돌 한글날을 맞아 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금관문화훈장은 우리나라 문화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최고 훈장이다. 고인이 된 그를 대신해 증손자 킴벌 헐버트(36)가 한국에 와서 상을 받았다. 킴벌 씨는 어린 시절 증조부가 남긴 여러 기록물을 보며 자랐다고 했다. 킴벌 씨의 아버지가 헐버트가 쓴 '사민필지'와 회고록을 '아주 소중한 책'이라며 잘 보관했기 때문이다.

"그 회고록엔 한글이 다른 나라 글자와 비교해 가장 우수하다고 나와 있었어요. 정말 한글을 사랑하신 것 같아요."

매년 한글날이 되면 한글 파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잼'(아주 재미있음) '노잼'(재미없음) 같은 비속어가 난무한다. '깜놀'(깜짝 놀라다) '존잘'(아주 잘생겼다) 같은 국적 불명의 말이 아름다운 우리말을 대신하고 있다. 한글을 사랑했고 그래서 죽어서까지 한국에 묻힌 헐버트가 요즘 세상을 대하면 어떤 말을 던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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