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신(文身)의 역사는 깊다. 빙하에서 나온 기원전 3천300년경 미라에서 문신이 확인되었을 정도이다. 중국 역사서인 삼국지 위지동이전의 '마한 남자는 때때로 문신을 했다'는 기록은 우리나라 문신의 역사도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방증한다.
그러나 '부모에게 물려받은 몸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이라는 유교적 이념이 지배하던 조선시대 이후 문신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눈길은 여전히 곱지 않다. 문신은 위화감과 혐오감의 심벌(Symbol)이었다. 신군부가 정권을 잡은 5공 시절에는 문신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삼청교육대에 끌려갔으며, 지금도 품격있는 골프장 목욕탕에는 문신 있는 사람의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문구가 걸려 있다. 문신이 병역기피의 수단으로 악용된 사례도 있다.
이처럼 조직폭력배의 얼룩덜룩한 몸이나 떠오를 만큼 혐오와 기피의 대상이던 문신이 근래 들어 하나의 패션 트렌드와 문화현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용어도 문신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털고 타투(Tattoo)라는 예술적 색채를 가미했다. 타투이스트라 하여 문신을 전문적으로 그리는 직업도 생겨났다. 타투 인구가 늘어나면서 문신이 의료냐 예술이냐를 두고 소위 '타투이스트 합법화' 논쟁까지 벌어지고 있는 판국이다.
더구나 인기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들의 '패션 타투'는 청소년들의 모방심리를 자극하며 문신이 젊은이들의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는 추세이다. 보일 듯 말 듯 손가락이나 발목에 은근히 드러난 미니 타투와 자신만의 신조를 다양한 문구로 새긴 레터링 타투 등이 그것이다. 문제는 양팔이나 가슴 또는 등을 온통 뒤덮는 문신이나, 온갖 현란한 색깔과 선정적인 문양이 들어간 타투이다.
문신은 한번 새기면 지우기가 어렵다. 크고 멋진 문신일수록 제거가 곤란하며 흉터가 남기 마련이다. 사람의 생각은 나이가 들고 경륜이 쌓이면서 바뀌기 마련이다. 타투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이다. 젊은 한 때의 과시욕으로 새긴 문신이 평생 지울 수 없는 신체적, 정신적 상처로 남을 수도 있다. 기어이 타투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싶다면, 피부에 상처를 내지 않고 스티커를 붙여 문신의 효과를 내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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