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 인생의 멘토] <15> 한동수 청송군수-문희갑 전 대구시장

"민원인과 소통한 文전 시장…청송 '열린 군정'의 스승

한동수 청송군수는 문희갑 전 대구시장을 인생의 스승으로 생각한다. 한 군수는 가끔 문 시장이 살고 있는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남평문씨 본리세거지에 들러 그와 담소를 나눈다.
한동수 청송군수는 문희갑 전 대구시장을 인생의 스승으로 생각한다. 한 군수는 가끔 문 시장이 살고 있는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남평문씨 본리세거지에 들러 그와 담소를 나눈다.

한동수(65) 청송군수는 본지에서 '내 인생의 멘토'를 시작할 때부터 고민했다. 한 군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어떤 사람을 선택해야 할지 몰랐다. 학창시절 가르침을 주신 은사도 있고, 속마음을 털어놓는 친구, 정치적인 조언을 해주는 동료와 선배 중 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군수는 그러던 중 가장 어려울 때 만나 지금까지 자신의 등을 두드려주는 사람이 생각났다. 바로 문희갑(77) 전 대구시장이다.

◆한동수 군수는 독한 사람(?)

한 군수는 스스로 천운을 타고났다고 말한다.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인 2학년 때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고, 24세 어린 나이에 '청송군 최연소 토목계장', 전국 기술직 사무관 시험에서 전과목 만점으로 1등, 대구시 공무원 중 처음으로 '토목시공기술사 시험 합격' 등 수많은 좋은 결과를 얻었기 때문에 그만큼 자신의 운이 남다르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동료와 후배는 "열성이 대단하다" 또는 "독하다"고 말할 정도다. 공무원 초임 시절 고교 중퇴의 학력을 보완하려고 일이 끝나면 틈틈이 방송통신고등학교에 다녔고, 이후 대구로 나온 뒤에는 전문대, 야간대학과 야간환경대학원을 거쳐 교통공학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현재 청송의 주요 도로인 주왕산~얼음골~항리~달산 구간 포장공사를 할 때 또래 친구들이 대학 방학에 맞춰 청송에 내려와 술 한잔 하자고 해도 그는 단호히 거절하고 새벽바람을 맞으며 공사현장을 찾아 다녔다고 한다.

사무관 시험은 시험 공고도 나지 않은 상태에서 2, 3년 전부터 시험 준비를 했다. 대구시청 앞에 여관방을 잡아놓고 퇴근만 하면 시험공부에 몰두했고, 이따금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오는 것 외에는 자신을 스스로 몰아세우며 공부했다. 쉬는 날이면 며칠 밤을 새우며 공부를 이어갔고, 코피가 터져도 앉은 자리에서 코를 틀어막고는 이내 책에 빠졌다.

46세 때 대구시 공무원 최초로 토목시공기술사에 합격했다. 그 덕에 후배들이 연이어 시험에 도전할 수 있었고, 19년이 지난 지금 30여 명이 넘는 공무원이 이 자격증을 갖고 있다고 한다.

◆최대의 위기 때 만난 멘토

한 군수는 1991년 대구지하철사업단에 지원했고, 당시 대구는 서울과 부산에 이어 가장 큰 공사인 대구지하철 1호선 설계 후 시공단계에 들어갔다. 지하철건설본부 공사과장을 맡으면서 밤낮 없이 일했다. 철판을 덮어놓은 도로변 지하에서는 터널을 뚫고 24시간 공사가 진행 중이었고, 비상연락망도 24시간 가동됐다.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한 군수는 "휴대전화가 처음 출시됐을 때 140만원을 주고 구입했다"며 "목욕탕에 갈 때도 휴대전화를 비닐에 싸서 들고 다닐 정도로 항상 긴장을 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던 중 1995년 4월 28일 대구 상인동 지하철 가스폭발사고가 일어났다. 이날 오전 7시 50분쯤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영남중고 앞 네거리 대구지하철 1, 2공구 부근에서 도시가스관이 폭발하면서 등굣길 학생과 출근길 시민 등 모두 101명이 숨지고 202명이 다쳤다.

"6개월간 사태를 수습하고 사망자에 대한 보상금까지 다 해결하고 나니 공무원 직업에 대한 회의가 느껴졌습니다. 공무원을 그만두겠다고 상관에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그의 등을 두드리며 용기를 준 사람이 바로 문희갑 당시 대구시장이었다. 그해 7월에 취임한 문 시장은 업무시작과 동시에 사고 수습에만 전념했다. 밤낮으로 현장에 가서 공무원들을 격려했고 누구보다 지하철공사 현장 공무원들의 노고를 알아줬다.

문 전 시장은 "당시 한 군수가 사고 현장에서 한 노력을 알고 있다. 자신이 사고를 모두 수습하고 공무원까지 그만둔다며 결심한 것을 보고받았다. 아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해 도로과 기획계장으로 발령을 냈고, 그때부터 나와 큰 사업을 많이 추진했다"고 떠올렸다.

◆서로 마음을 읽었던 두 사람

지금의 '신천동로'는 신천대로와 더불어 대구시민들의 주 통행로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초창기 진입로가 좁고 U턴이나 P턴으로 진입해야 해서 '신천미로'라는 오명까지 얻으며 언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이 신천동로가 개통될 당시 1998년 말 인근 주민들은 아파트 진입로가 폐쇄됐다면서 도로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문 전 시장은 "당시 주변 주민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내 사진을 도로에 깔아놓고 밟으며 농성이 과열될 때 한 군수가 도로과장을 맡고 있었는데 주민들을 찾아가 설득했고, 그의 노력에 주민들도 차츰 이해하고 민원이 잘 해결됐다. 현재는 신천동로 덕에 대구 교통체증이 덜해진 것"이라고 했다.

문 전 시장은 취임 직후 민원인이 직접 시장에게 민원을 제기하고 답을 들을 수 있는 '직소민원'을 설치했다. 문 전 시장은 직원들에게 "직소민원에 제기된 민원은 어떠한 부서도 먼저 봐서는 안 되고, 순서도 절대 바꿀 수 없다"고 말하며 "이를 어길 경우 중징계를 내리겠다"고 엄명했다.

직소민원에 해당하는 과의 과장과 담당은 24시간 문 시장의 전화를 기다렸고, 시장실로 불려가는 날이면 2, 3시간은 기본적으로 혼이 났다고 한다.

그런데 직소민원이 진행되면서 시청 직원들은 시장실에 가기 전에 꼭 한 곳을 먼저 들렀다고 한다. 바로 한 군수가 있던 도로과였다. 한 군수는 문 전 시장의 생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조언을 구한 뒤 시장실에 올라가면 답변도 수월해지고 해답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 군수는 지금 문 전 시장이 한 것처럼 민원인을 직접 군수실에서 만난다. 사전에 약속하지 않더라도 군수실에 있는 동안에는 어떠한 민원도 직접 만나 수첩에 적는다.

그가 적은 내용은 해당 과장과 담당에게 직접 지시를 내리고, 이동 중이나 다른 업무를 볼 때도 수시로 수첩을 펼쳐가며 담당자에게 확인한다. 문 전 시장의 직소민원처럼 한 군수는 '열린 군수실'을 통해 민원인을 대한다. 멘토에게 배운 그대로 행하는 것이다. 청송 전종훈 기자 cjh49@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