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굴의 시대/박노자 지음/한겨레출판 펴냄
한국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책이다. 해외에서 유학하고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해외 여행을 다녀보면, 혹은 해외 뉴스를 접해보면 한국은 대단히 장점이 많은 나라다. 대단히 장점이 많은 한국사회를 이 책은 무척 차갑게 바라본다. 더 건강한 한국사회 건설을 위해 우리가 곱씹어볼 만한 내용도 많지만, 한국이 겪어온 신산의 역사를 배제하고, 문제점만 뚝 떼어내 지적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겠다.
책은 '한국은 거대한 병영국가이고 무간지옥(불교에서 말하는 지옥 중 하나로 고통이 가장 심한 지옥)이며 괴물제작소'라고 비판한다. 지은이는 '한국의 안보의식, 북한에 대한 시선,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 시장에 대한 신격화' 등이 한국이 '병영국가'임을 보여주는 예라고 말한다.
책은 또 한국사회는 낙오에 대한 공포가 만연한 사회라고 지적한다. 한국사회의 교육기관과 언론이 상정해놓은 준거집단, 즉 주류집단에 포함되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주눅이 든 채 살아간다. 자라는 아이들은 이 준거집단에 들어가지 못할까 봐 학창시절 내내, 취업하기까지 공포에 시달린다. 준거집단에 속한 사람도 언제 그 집단에서 밀려날까 노심초사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 공포를 다소 극단적으로 비교하는 데 '북한에서 수령님의 초상화를 우연히 잘못 건드린 사람이 평생 한 번 느낄까 말까 한 공포는, 대한민국에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매순간 느끼는 공포에 비하면 약과인지도 모른다'고 쏘아붙인다. 그러면서 우리들 대다수가 공포감과 허무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다수가 연대해서 공포가 필요하지 않은 사회적 게임룰을 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무한경쟁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공포에서 벗어날 길이 없고, 무한경쟁이 지배하는 한 한국의 아이들은 '괴물'로 성장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인류의 존재근거가 경쟁이었다. 따라서 현 수준에서 경쟁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지은이는 '경쟁이 치유하기 힘든 인류의 질병이라고 해도 고치기 위해 한 걸음씩 걸어가야 하며, 경쟁적 선발 원칙을 유지한다고 해도 그 선발의 관문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에게 안전하고 인간적 존엄성이 보장되는 삶을 제공하는 것이 제대로 된 사회'라고 말한다. 승자독식, 패자를 위한 어떤 사회적 안전망도 위안도 없는 사회에서 비폭력, 양보, 배려 따위는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비폭력, 배려, 평화, 행복은 그것을 찾는다고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승자독식 룰'을 깰 때 발생한다는 것이다.
지은이가 펼치는 주장 중에는 인과관계를 무시하거나 지나치게 이상적인 주장도 다수 눈에 띈다. 가령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 지은이가 '중미 대립의 한복판에서 제주도민과 나아가 한반도인을 사실상 인질로 잡아두는 일이다. 그것은 인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기도 하다. 중미 갈등이 최악으로 치달을 경우, 해군기지 건설을 밀어붙인 지배층은 당연히 쉽게 도망가겠지만 나머지 한반도인은 전장화된 삶의 터에서 상상 이상의 재앙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부분 등이다.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없다고 중미 대립에서 우리가 안전해질까. 과거 청나라와 일본의 전쟁,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 때 변변한 무기도 군대도 없었던 한국이 전쟁터가 되었다는 사실을 지은이는 어떻게 설명할까. 그때 우리에게 강한 군대가 있었다면 그들이 감히 우리 땅에서 전쟁판을 펼 수 있었을까.
지은이는 자본주의 사회를 우리가 몰아내야 할 '도둑'으로, 사회주의를 우리가 맞이해야 할 '손님'으로 인식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병폐를 지적하는 정도를 넘어 신랄하게 비판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375쪽, 1만7천원.
조두진 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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