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대처 전 영국 총리가 타계했을 때 영국 내 평가는 극과 극이었다. 유럽 최초의 여성 총리로 세 차례나 총리 자리에 오른 그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강한 리더십으로 '유럽의 환자' 영국을 일으켜 세운 지도자다. '영국병의 주치의'라는 별명도 붙었다. 하지만 '영국을 파괴시킨 마녀' '북해 유전의 최대 수혜자'처럼 시각에 따라 평가가 천차만별이다.
대처 시절 영국은 신자유주의와 긴축 정책으로 사회 양극화가 심각했다. 노조는 공권력에 밀렸고, 조선'철강 등 제조업이 위축돼 북부지역은 실업자로 넘쳤다. 대처리즘의 최대 피해자로 인식한 스코틀랜드인들은 대처가 죽자 샴페인을 터뜨렸다. 리버풀 등 북서부 축구팬들은 프리미어리그 경기 때 대처를 기리는 1분간의 묵념조차 거부했다.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가 23일 타계했다. 그는 1959년 자치령 초대 총리를 시작으로 31년간 싱가포르를 경영한 인물이다. 리콴유를 빼고 싱가포르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말도 있다. 싱가포르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자의 도시'라는 뜻의 싱가푸라(Singapura)가 어원이다. 싱가포르의 상징물인 사자 얼굴에 물고기의 몸을 가진 머라이언(Merlion)에서도 확인된다.
이런 국명과 달리 싱가포르는 1965년 말레이 연방에서 독립한 가난한 어촌에 불과했다. 먹는 물도 수입에 의존해야 할 만큼 자원 빈국이었다. 이를 반세기 만에 아시아 최고 부국으로 키운 것이 리콴유의 신화다. 그는 실용주의자였다. 청렴과 청결'질서를 강조하고 범죄자는 태형으로 다스렸다.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 때문에 '부유하지만 숨 막히는 감옥'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하지만 "싱가포르가 잘못되면 무덤에서 일어나겠다"고 연설할 만큼 국가 생존과 번영에 일생을 건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생전 그는 "내가 죽거든 집을 기념관으로 만들지 말고 허물어라"는 유언을 남겼다. 싱가포르의 번영에 내 집이 걸림돌이 된다면 차라리 없애는 게 맞다는 리콴유의 철학이 녹아 있다. 1976년 "내 유해를 화장해 조국 산하에 뿌려달라"고 한 저우언라이 전 중국 총리의 유언과도 중첩된다.
지도자의 철학과 국가경영 방식은 유무형의 유산이다. 그 유산에서 어떤 교훈을 찾을지는 남은 이의 몫이다. 장점은 장점대로, 단점은 단점대로 공정하게 평가하고 다음 세대에 그 가치를 물려준다면 그것으로 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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