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10시 대구 남구 한 사찰 인근 주택가는 한마디로 휑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공무원 K(52) 씨의 집이 근처라는 이야기가 떠돌면서 행인들의 발길 뚝 끊어진 때문이다. 이날 초하루 기도행사가 있는 사찰에도 신자들의 발길이 눈에 띄게 적었다. 과일 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분위기가 정말 이상하다. 사람이 거의 안 오고, 오더라도 금방 간다"고 말했다. 근처 편의점에서는 마스크가 동나는 등 주민들의 극심한 불안감이 감지됐다. 한 불교 신자는 "딸이 이 동네는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기도하는 날이라 잠깐 왔다가 가는 길이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메르스 환자인 K씨가 다녀갔다는 목욕탕 주변도 썰렁했다. 4층짜리 목욕탕 건물 입구에는 셔터가 내려져 있었고 '긴급 소독으로 16일은 임시 휴업한다'는 안내 문구만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주민 권모(25) 씨는 "여기가 동네에서 가장 큰 목욕탕인데 휴업해서 걱정이다. 나도 목욕탕 회원인데 불안해서 보건소에 가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목욕탕 맞은편 시장. 점심때가 가까워지는데도 손님이 없었다. 상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메르스와 관련한 정보를 공유하며 집에서 만들어온 것이라며 양파 끓인 물을 나눠 마시기도 했다. 한 상인은 "딸이 오늘은 집에서 쉬라고 말렸지만 그래도 일이라 찝찝함을 무릅쓰고 장사하러 나왔다"고 했다.
K씨가 근무한 주민센터 주변 주민들도 온종일 불안에 떨어야 했다. 주민센터는 현재 폐쇄된 상태이고 구청 직원이 파견 나와 앞을 지키고 있었다. 구청 직원은 "오전부터 주민센터 앞에 항의하러 온 주민들로 한숨 돌릴 틈도 없었다"고 말했다. 주민 권소영(36) 씨는 "주민센터 직원이 노인 일자리사업을 맡는 등 노인들과 접촉이 많았는데 접촉자 격리 안내도 없이 자진신고만 하라고 하는 상황이다. 일부 노인들은 그런 안내도 받지 못해 신고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K씨가 방문했다는 경로당은 이날 문이 잠겨 있었고 근처에 문을 닫은 상가도 눈에 띄었다. 인근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윤모(52'여) 씨는 "동네에 이번처럼 사람이 없기는 처음이다. 이러다 상권이 다 죽지 않을까 걱정이다. 동네 곳곳에 방역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남구보건소 앞 '메르스 대비 외래진료소'에는 불안을 호소하며 찾아오는 주민들로 북적였다. 이모(65'여) 씨는 "K씨가 다닌 목욕탕 회원인데 혹시 K씨 부인도 여탕을 이용한 것은 아닌지 걱정돼 증상을 확인하러 왔다"고 말했다.
김의정 기자 ejkim9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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