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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고고인류학과·경북대 대학원 영문학 석사
경북대 고고인류학과·경북대 대학원 영문학 석사

나는 몇 차례 같은 영화를 대구와 서울에서 각각 한 번씩 본 적이 있다.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회식을 하거나 모임을 가지다 보니 생긴 일이었다. 또 대세에 따르는 것이 미덕으로 분류되는 한국의 문화도 이런 결과에 한몫했을 것 같다. "나 저 영화 봤는데"라고 주장해도 "다수가 보지 않았으니 네가 양보하고 한 번 더 봐라"는 강권을 이겨낼 도리가 없는 것이다. 사실 똑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일은 심하게 돈 아깝거나 불쾌한 일은 아니다. 특히 다른 두 도시에서 같은 영화를 보며, 비슷하면서도 다른 관객들의 반응을 관찰할 수 있는 것은 흥미롭기까지 하다.

몇 해 전 '배트맨 다크나이트 라이즈'라는 영화를 볼 때였다. 영화 중간에 캣우먼이 배트맨과 대화를 끝낸 후, 인사도 없이 휙 사라지는 장면이 있다. 그걸 본 배트맨은 이렇게 중얼거린다. "내가 당해보니 참 기분 더럽네." 서울에서는 관객들이 이 장면에서 빵 터졌다. 그러나 대구에서는 정말이지 놀랍게도, 그 큰 영화관에서 단 한 사람도 웃지 않았다. 기질이나 성향의 차이일까? 확실히 대구와 서울은 웃음이 터져 나오는 지점이 좀 다르긴 하다. 대구는 아무래도 슬립스틱스러운 부분에서 크게 터진다. 반면 서울은 미국식 유머에 좀 더 민감하다.

그러나 나는 그런 해석보다는 '정보의 부재' 쪽에 더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아까 말한 저 장면에서 웃기 위해서는 배트맨의 전작들을 봤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전작들에서 배트맨이 얼마나 많이 '인사도 없이 휙 사라지는' 것을 통해 영화 속 다른 인물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던가를 기억해야 한다. 대구 사람들은 확실히 이전 배트맨 시리즈를 '보지 않았거나', 혹은 보고서도 그 배트맨의 나쁜 버릇을 '잊어버렸을' 확률이 크다. 그래서 서울 관객들과는 달리 저 장면에서 웃지 않는 것이라고 나는 그런 결론을 내렸다.

다른 예를 한 번 들어보자. 소포클래스의 '오이디푸스 왕'이라는 고대 그리스의 연극이 있다. 연극이 시작되면 이 연극의 배경이 되는 테베는 역병의 발생으로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어 있다. 오이디푸스 왕은 주위를 불러들여 역병을 발본색원할 신탁을 의뢰한다. 그러자 신탁은 선왕의 시역자를 찾아서 단죄해야 역병이 사라질 것이라 답한다. 왕은 준엄하게 좌우에 수교를 내린다. "내 그 악독한 놈을 찾아, 당장 벌하리라! 반드시 색출하라!" 이 장면에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빵 터지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고소를 금치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악독한 놈'은 그러니까 '역병을 퍼뜨려서 테베를 핍진하게 만든 그자'는 바로 오이디푸스 자신임을 당대의 그리스인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스키타이인이나, 카르타고인이 이 연극을 보았다면 그는 저 장면에서 '빵 터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이방인들은 부지불식간에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자기 어머니를 범하게 된 오이디푸스의 전설을 모르거나, 듣고도 대수롭지 않게 잊어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히려 저 장면에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오이디푸스 왕은 정말 성군이군.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해!" 내지는 이런 객쩍은 소리들이나 하는 것이다. "왕이 입고 있는 저 테베의 전통 궁중의상은 너무나 황홀하군. 스파르타나 아테네 사람들 사이에서 얼마나 유행할까?"

나는 대구를 사랑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대구 사람들도 사전 정보를 가지고 연극이나 영화를 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야 최신의 코미디 영화를 제때제때 빵빵 터지면서 제대로 즐길 수 있지 않겠나. '휙 사라지거나', 혹은 '자기가 자기를 체포하려는 장면에서' 외려 이상한 감동을 느껴버리는 오독을 대신해서 말이다.

박지형/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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