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6월 14일, 하늘은 맑았으며 바람 또한 고요했다. 대지를 비추는 햇살은 팔공산 절경과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했다. 경쾌한 타구음 뒤에 오는 웃음, 그리고 '나이스 샷!'. 뒤따르는 잡담이나 농담도 그날 우리들의 플레이에 기죽었는지 침묵만 흐르고 있었다. '굿 샷, 나이스 버디, 나이스 파'. 그저 일상적인 용어가 침묵을 깨는 유일한 언어였으며, 서로 자기 플레이에 집중하며 그렇게 홀이 흐르고 있었다.
어느덧 전반 9홀이 지나고 스코어를 보며, 그제야 모두 한마디씩 농담과 격려의 말을 주고받았다. 세미프로다운 동반자들의 기록을 적었다. 4명의 스코어에 적힌 종합이 "이글 2개, 버디 11개, 보기 3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접전이자, 최고의 기록들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후반 9홀. 1번 홀부터 2명이 버디를 연출하며, 경기에 더욱 집중하게 만들더니 결국 12번 홀 파5에선 2명이 동반 버디를 기록하기도 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도착한 14번 파5홀. 전 홀 유일하게 보기를 한 터라 버디로 만회하고자 힘찬 드라이브샷을 날렸고, 공은 원하는 방향대로 잘 날아갔다. 남은 거리 앞바람에 내리막 202m 우측 그린. 라이도 좋고 스탠스도 평평했다. 주저 없이 선택한 우드 4번 샷. 집중하며 휘두른 샷이었지만 약간 탑볼의 느낌도 들었다. 볼은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뒤에 있던 후배가 "굿샷!"을 외치기에 혹시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어~ 어~ 어~, 형 들어간 것 같아"라는 말이 들렸다. 캐디 또한 "핀을 맞았다"고 얘기해서, '핀 근처에 붙어서 이글은 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린에 다가갈수록 공이 없어서 '설마, 알바트로스?'라는 기대감도 가졌다. 그 기대감은 현실이 되어, 내 인생의 단 한 번 올까 말까 한 알바트로스가 됐다. 내 골프 인생에 처음 만난 신비의 알바트로스는 이렇게 내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팔공컨트리클럽 개장 이후 제1호 '알바트로스'가 됐다.
더불어 동반자들의 스코어도 아직 골프장 역사에 남을 정도다. "알바트로스 1개, 이글 2개, 버디 17개". 공식기록은 아니지만 그날 우리가 기록한 기록은 골프 동호인들에게 한동안 회자되었다. 가슴 아픈 일도 더불어 생겼다. 이후, 그 당시 동반한 이모 프로가 하늘나라로 가서 그 당시 기억을 하면 할수록 가슴이 아리기도 한다.
"인생의 삶에도 그러하겠지만 골프의 행운은 언제나 예상치 않은 순간 갑자기 다가온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 기억이 더욱 또렷해지는 건 왜일까?"
※'내 골프인생 대박사건' 새 시리즈에 여러분의 사연을 담아 드립니다.
이 코너에서는 매주 골프를 사랑하는 애호가들의 홀인원, 알바트로스, 이글 등 행운의 샷과 함께 생애 최저타 기록을 세운 날의 에피소드를 소개합니다. 독자 여러분 중에서도 평생 잊지 못할 골프인생의 행운이나 사건 등이
있으면 사연을 보내주십시오. 지면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문의=골프담당 권성훈 기자(053-251-1665), 이메일=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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