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의 최측근 강태용에 대해 검찰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달 어느 날. 법조계 지인을 우연히 만났다. 평소 대구 법조계 사정에 누구보다 귀가 밝은 분이었다. "검찰이 강태용 수사를 더 이상 확대하지 않을 것 같다. 위쪽과도 얘기가 된 듯하다. 강태용 구속으로 검찰의 체면이 어느 정도 섰고, 내년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데 이 건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강태용 기소장에도 별 내용이 없을 것이다." 반신반의했다. 강 씨 기소까지 열흘가량 남은 상황에서 기소장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검찰이 지난 4일 강 씨 기소와 관련해 언론 브리핑을 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피고인(강태용)은 조희팔 등과 공모해 상습적으로 2006년 11월부터 2008년 10월 31일까지 2만9천207명의 피해자들에게 2조7천982억여원을 송금 받아 편취했고, 다단계 법인의 자금을 202억여원 횡령했고, 50억원을 배임했으며 전직 경찰관 두 명에게 각각 1억원과 5천600만원을 뇌물로 제공했고, 또 다른 경찰관과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 60억원가량의 범죄 수익금을 세탁·은닉했다.'
검찰이 새로 밝혀낸 내용이라곤 피해자(애초 2만5천여 명)와 피해액(2조5천여억원)이 더 늘었고, 횡령액이 100억원가량 더 증가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강 씨가 고교 동기였던 김광준 전 서울고검 부장검사에게 준 2억7천만원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없었다. 강 씨가 횡령한 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했는지도 밝히지 못했다.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열흘 전 지인이 '기소장에 별 내용이 없을 것이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검찰이 강 씨 수사에 앞서 미리 결론을 내놓고 끼워 맞추기식 수사를 한 것 아닌가라는 의심까지 들었다. 기소장 어디에도 국민이 정작 궁금해하는 정·관계 로비 의혹과 비호세력 실체, 은닉 재산 행방, 조희팔 생존 의혹 등에 대해서는 찾아볼 수 없다.
본란에 쓴 '검찰 시험대에 오르다'(2015년 10월 23일 자)는 글에서 검찰이 강 씨를 통해 사기 사건의 실체를 밝혀내면 구겨졌던 체면을 세우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신뢰를 더 잃을 수밖에 없다고 적었다. 현재까지 내놓은 결과로는 체면을 세웠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향후 수사 결과에 따라 궁지에 몰릴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피해자들의 반응도 이해하기 어렵다. 강 씨가 지난해 10월 중국에서 검거된 후 연일 조 씨 사기 행각과 관련한 각종 의혹을 제기하며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줄 것을 요구하던 피해자들은 정작 강 씨 수사 결과와 관련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검찰의 수사에 만족하는 것인지, 일찌감치 검찰에 대한 기대를 접은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최근 검찰 인사가 단행됐다. 조 씨 사건을 담당했던 주요 간부들은 승진 또는 전보됐고, 새로운 인물로 채워졌다. 심기일전할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 다행히 검찰은 "강 씨에 대한 수사는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이제까지 강 씨 기소를 위한 수사에 중점을 뒀다면 앞으로는 제기된 의혹에 대해 차근차근 수사하겠다는 것이다.
전현준 신임 대구지검장은 "중요한 사건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고, 사기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대한 의혹과 은닉 재산 환수 수사를 철저히 지휘하겠다. 사건의 진상을 파악해 그에 따른 비호 세력까지 발본색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강 씨 수사는 조 씨 사기 사건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3만 명에 가까운 피해자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고,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신임 지검장의 취임 첫 약속을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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