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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심양박물관 여신상(女神像)의 미소와 역사 둔갑

"대~한민국!"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온 관중석을 가득 채운 붉은 물결과 함께 힘찬 구호로 응원을 이끌던 붉은악마 서포터스가 흔들던 큰 깃발에는 무서운 도깨비 모양의 '치우천왕'(蚩尤天王)이 그려져 있었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응원단의 상징이 된 치우천왕은 어떤 존재일까? 치우천왕은 동아시아 고대 역사에 전쟁의 신으로 추앙되는 전설의 인물이다. 중국 역사서에 중국 민족의 시조인 황제 헌원씨가 탁록이라는 벌판에서 큰 싸움을 벌여 이겼다고 언급된 인물로 구리 투구에 철제 갑옷을 입고 활을 잘 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중국에서는 곳곳에 '삼조당'(三祖堂)이라는 것을 건립하여 이 치우천왕을 황제 헌원씨, 염제 신농씨와 함께 중국 민족의 시조로 기념하는 일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붉은악마는 뜬금없이 중국 민족의 시조를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팀의 상징으로 삼고 응원한 것일까? 바로 여기에 역사 둔갑의 비밀이 숨어 있다.

사실 치우천왕은 중국 민족에게는 이른바 오랑캐라 일컬어지는 큰 활을 쏘는 사람들 즉, 동이족(東夷族)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1980년대까지만 해도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중국 민족의 시조로 기술된 황제 헌원씨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전설상의 인물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로 황제 헌원씨에다 염제신농씨와 치우천왕까지 합쳐 중국 민족의 3조상으로 기념하는 일이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바로 중국 정부가 동이족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에 억지로 포함시켜 중국과 만주, 한반도 전체 역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하는 이른바 동북공정의 일환이다. 이런 동북공정이 추진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1984년 만리장성 밖인 만주 요하 지역에서 중화민족, 즉 한족의 '황하문명' 유적보다 무려 1천 년이나 앞선 별도의 '홍산문명'(요하문명)의 고대 국가 유적이 다수 발견된 놀라운 사실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2009년 'KBS 역사스페셜 만주 대탐사'에서 상세히 다루기도 했다.

지금 만주 랴오닝성 심양박물관에는 중국 고고학 역사상 최고의 발굴품이라 자랑하는 5천 년 전 미소 띤 거대한 여신 석상 사진이 걸려 있다. 여기에는 안타깝게도 '중국 여신의 미소'라는 해석이 붙어 있다. 우리가 역사를 돌아볼 때 이른바 '환빠'(환단고기를 신봉하는 사람)가 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엄연히 세상에 드러난 조상의 찬란한 유물과 유적이 남의 것으로 둔갑하고 있는데도 무관심해서야 되겠는가. 그런데 동양의학계에서도 중국의 이런 횡포가 벌어지고 있는데, 이를 중국 정부의 역사공정에 빗대어 '중의약공정'이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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