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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주의 시와함께] 흑백삽화안현미(19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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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이면지를 부적처럼 가지고 있다

기역 니은 디귿 리을처럼 슬픈 이면지를

색깔이 없는 얼굴, 색깔이 없는 생각,

색깔이 없는 슬픔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

기역 니은 디귿 리을처럼 흘린 시간을

반쯤은 치기로 그 시간의 칼날을 휘둘러 동반자살을 꿈꾸며

자음만으로는 도저히 슬퍼할수 없다고 했던 건 당신이었나

모든 슬픔들은 모음을 필요로 한다고 했던 것도 당신이었나

기억 니은 디귿 리을,

기억 니은 디귿 리을

중략

결국 반쯤은 사기였던 우리들의 연애는

(부분. 좬이별의 재구성좭. 창작과 비평사. 2009)

시를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모음을 고른다. 이 시인의 말처럼 로 하기 때문이다. 내 모음은 무엇이 되었을까?

십년 동안 시를 쓰기 위해 담배 종류를 해마다 몇 번씩 바꾸었고, 몇 명의 연인을 보냈고, 이사를 20번 가까이 했다. 이사 때마다 버린 이불도 꽤 되고 내가 잃어버린 것 중엔 수첩이나 바늘도 있다.

내 하루는 여전히 어떤 종류의 상실을 견디는 일이며 시를 쓰는 것을 통해 감정의 자연을 만드는 일이다.

나는 시간을 위독하게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래야 시인일테니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들 또한 나를 속이기 위한 사기 같은 것이었을지 모른다.

상실이 있던 자리에서 우리가 서로를 속이지 않고 지나갈 수 있었던 자리가 있었을까?

당신을 무작정 편들고 싶었던 날들, 당신이 무작정 내 편이 되어주었으면 했던 나의 모음들, 그리고 그 곁을 차지했던 무수한 자음들, 우리가 편들고 싶었던 언어는 모두 시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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