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9988! 빛나는 실버] 배낭여행가 박철우 씨

약속 시간을 오전에 정하지 않았다면 걸어서 왔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도보 여행을 많이 다닌다고 해서 까맣게 그을렸을 것이란 선입견도 빗나갔다.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다닌다는 배낭여행가 박철우(63'대구시 달서구 대곡동) 씨의 얼굴은 의외로 뽀얗다.

여행! 듣기만 해도 낭만적이지 않은가. 영화 '타이타닉' 같은 크루즈 여행도 좋고 '로마의 휴일'처럼 고풍스러운 낯선 유럽 도시들도 좋다. 더욱이 박 씨는 패키지여행이 아니라 혼자서 오지를 탐험하고 유적지와 사람 사는 현장을 찾아다닌다.

박 씨는 직장에서 30년간 근무하다 2009년 대구은행 지점장으로 퇴임했다. 퇴직 후에는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훗날 되돌아보았을 때 후회하지 않을 일이 무엇일까를, 퇴직하기 2년 전부터 생각했다고 한다. 여러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으나 항상 꿈꿔왔던 건 자신만의 여행이었다. 인생 2막은 경제 활동이 아니라 여행으로 채우기로 결정한 그는 2009년 1월 말 퇴직하자마자 미얀마로 떠났다.

"대략 6개월 정도는 집 밖에서 삽니다. 국내 여행까지 합하면 훨씬 많겠지요. 해외에 갈 때는 배낭여행을 하고 국내는 주로 도보 여행을 합니다. 특별히 건강을 위해 신경 쓰는 건 없습니다. 도보 여행을 하니 건강관리는 해결되더군요. 체력이 따라줄 때 멀고 힘든 해외 쪽을 먼저 다니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앞으로 10년은 이 페이스가 가능할 것 같아요."

그는 여행 경비를 자신의 생활비 범위 내에서 사용한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먹을 것까지 아끼며 한 곳이라도 더 보려고 쫓아다니는 학생들에 비하면 게스트 하우스와 여관 독방을 번갈아 이용하는 자신은 부자 배낭여행객이라고 한다.

"해외는 대륙으로 치자면 아프리카를 제외하고는 다 가보았으나 제대로 보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미국, 일본, 중국도 더 다녀야 하고 북유럽과 중동도 가야 합니다. 올해는 아프리카로 떠날 예정입니다. 국내 도보 여행은 제주도 해안선 및 올레길 완주, 동해안, 남해안, 서해안 바닷길, 청송에서 영월까지 외씨버선길, 울릉도 등을 다녔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힘들고 위험한 순간이 적지 않았다. 중국 북경에서는 지하철 운행 전이라 새벽에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강도로 돌변했다. 뉴질랜드에선 폭우를 만나 길을 잃고 헤매던 중 벼락이 자신의 바로 옆에 떨어져 잠시 넋이 나가기도 했다. 물론 즐겁고 보람 있을 때가 더 많았다. 교통편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오토바이를 기꺼이 태워준 미얀마 사람, 볼리비아 우유니에서 고산병에 시달릴 때 옆에서 신경 써주던 미국인 에릭과 그 일행 등은 잊지 못한다.

"여행을 나설 때는 겁내지 마십시오. 혼자 다니면 위험하지 않느냐고 묻기도 하는데 우리는 휴전 중인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 간들 헤쳐나가지 못할까요. 언어도 걱정 마세요. 외국 학생들은 우리말을 배우지 않고도 잘만 돌아다닙니다. 여행안내서나 보디랭귀지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내가 없어도 가정과 사회는 흐트러짐 없이 잘 돌아갑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엾은 사람은 출발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지금 망설이고 있다면 결정을 내리라고 권했다. 참다운 여행은 배움의 과정이고 수행의 길이라는 게 박 씨의 생각이다. 여행 노트를 작성하고 있다는 그는 '바람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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