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중권의 새論새評] 세속적 욕망'에 관하여

서울대(미학과 학사·석사) 졸업.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전 중앙대 겸임교수. 현 카이스트 겸직교수
서울대(미학과 학사·석사) 졸업.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전 중앙대 겸임교수. 현 카이스트 겸직교수

광주·부마항쟁이 신성한 기억인 이유

인류 보편의 가치 민주주의 열망 때문

애먼 지역민 상대 호남 패권주의 선동

눈 뜨고 보기 힘든 현대 지식인의 참상

최근 어느 교수가 더 이상 광주를 '민주화의 성지'라는 명분에 가두지 말고 '호남의 세속적 욕망'을 긍정하라고 외치고 나섰다. 충격적인 주장이나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비슷한 얘기를 과거에 이미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강준만 교수가 광주항쟁과 관련하여 "호남 사람들의 정치의식을 과대평가하지 말라"고 내게 충고한 적이 있다.

어쩌면 그들이 정말로 불편한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마항쟁'도 말이 신성한 민주화 운동이지, 까놓고 말하면 결국 박정희가 김영삼을 제명한 데에 대한 지역민들의 반발이 아닌가. 또 '광주항쟁'도 말이 신성한 민주화 운동이지 관점에 따라서는 신군부가 김대중을 체포한 데에 대한 지역민들의 반발로 볼 수도 있지 않은가.

따지고 보면 신성하다고 일컬어지는 부마항쟁이나 광주항쟁의 바탕에도 지역주의의 세속적 욕망은 도도히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게 우리 모두가 알면서 말하기를 꺼리는 '낯선 상식'인지도 모른다. 솔직히 그런 측면이 없었다고는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것이 부마항쟁의 본질이고, 광주항쟁의 본질이란 말인가?

중요한 것은, 김영삼을 지지하던 부산과 마산의 지역주의든, 김대중을 지지하던 호남과 광주의 지역주의든, 그 시절에는 '민주주의'라는 사회 보편의 열망과 인류 보편의 가치와 합치되었다는 점이다. 바로 그 때문에 그 밑에 흐르는 세속적 욕망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광주항쟁과 부마항쟁을 이 사회의 신성한 기억으로 보존하려 하는 것이다.

반면, 또 다른 형태의 지역주의가 있다. 가령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광주의 학살자인 전두환·노태우에게 몰표를 던지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지역주의를 비난하는 것은 그것이 사회의 보편적 가치와 아무 상관이 없거나, 심지어 거기에 배치되기 때문이다. 이 두 유형의 지역주의는 모두 세속적이나, 그렇다고 둘을 등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인터넷에 동영상을 캡처한 흥미로운 사진이 떠돌았다. 경상도 지역의 어느 아주머니가 카메라를 향해 "나라를 팔아먹어도 나는 새누리당을 찍는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이 사진이 특히 인상적인 것은, 지역주의 의식이 사회 보편의 가치를 노골적이며 도발적인 방식으로 부정할 정도로 극단화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정 지역에 모여 사는 사람들이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고유의 정서를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왕이면 내 고향 사람들이 이 사회의 높은 자리들에 오르기를 바라는 것도 양해할 만한 일이다.(솔직히 말하면 양해는 해도 이해는 안 간다) 다만 물어야 할 것은 그 세속적 욕망이란 것이 얼마나 사회 보편의 가치와 일치하느냐다.

이른바 낯선 상식을 말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그들이 긍정하자고 주장하는 그 호남의 세속적 욕망이 과연 사회의 보편적 가치와 일치하느냐는 것이다. 그 욕망은 과연 사회의 보편적 동의를 얻을 수 있는 형태의 것인가? 만약에 그렇다면, 그 욕망은 세속적이면서도 동시에 성스러울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이 주장하는 욕망이 과연 그런 것일까?

호남의 세속적 욕망을 긍정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그보다 결코 덜 탐욕스럽지는 않을 영남의 세속적 욕망도 긍정해야 한다. 어차피 둘 다 세속적 욕망인데, 한쪽만 긍정하고, 다른 쪽은 부정할 수는 없잖은가. 그래서 두 욕망이 충돌하면, 어느 쪽이 이기겠는가? 그 싸움의 승패는 윤리학적이 아니라 인구학적으로 결정될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물음이 하나 더 남아 있다. 도대체 호남의 세속적 욕망이란 도대체 '누구'의 욕망이란 말인가? '호남인'이라 해서 등질적 집단인 것은 아니다. 그 안에도 기업주가 있으면 노동자가 있고, 정규직이 있으면 비정규직이 있고, 건물주가 있으면 세입자가 있으며, 정치인이 있으면 유권자가 있다. 이 중에서 도대체 '어떤' 호남인의 욕망이란 말인가?

대답은 뻔하다. 이 뻔뻔한 욕망의 정체를 폭로해야 할 임무를 가진 지식인들이 외려 지역주의 이데올로그가 되어 애먼 지역민들을 상대로 원초적 감정을 선동하는 것은 정말로 눈 뜨고 봐주기 힘든 지적 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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