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가 및 이두의 연구'라는 저서를 발표, 이 분야 독보적인 존재였던 오구라 신페이 교수가 1944년 2월 8일 숨을 거뒀다. 향년 62세. 그는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으로 건너와 1926년 경성제국대학 교수가 됐고, 향가와 이두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말이 서툰 일본학자였지만, 고대 조선어와 조선어 방언 연구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자칭 '국보' 양주동은 오구라의 학문적 성과에 자극을 받아 국학자로 변신했다. 일본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던 양주동은 향가 해석이 일본인에 의해 좌우되는 것에 반발, 돌연 국학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1942년 '조선고가 연구'로 오구라가 평생에 걸쳐 쌓아놓은 업적을 휴지로 만들어 버렸다. "(오구라의 저서는) 절반 이상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정면으로 비판한 양주동은 해독의 정확성과 문학적 감성, 논리의 완벽성에서 오구라를 압도했다. 하지만 오구라가 없었다면 양주동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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