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중권의 새論새評] 배신의 심리학

서울대(미학과 학사
서울대(미학과 학사'석사) 졸업.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전 중앙대 겸임교수. 현 카이스트 겸직교수

대통령 독특한 인식 '이견이 곧 배신'

이한구 보내 '배은망덕' 비박계 응수

북한 핵·미사일 배신감, 개성공단 중단

사드 배치, 중국에 미리 던져버린 카드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원리가 '배신의 심리학'이라고 느끼는 것이 나만의 일일까? 누구의 심리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대통령의 심리라 대답해야 할 것이다. '배신'이라는 코드가 아예 사회의 주요한 사건들의 의미를 해독하는 키워드가 된 느낌이다. 이 열쇠를 들이대면 이성적 사유에 부조리하게 느껴지는 사태들도 설명이 가능해진다.

총선 정국을 예로 들어 보자. 새누리당에서는 이른바 친박과 비박의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이 드라마의 클라이맥스는 아마도 김무성 대표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앞에서 면접을 보는 장면이리라. 자기가 임명한 사람 앞에서 자기가 면접을 봐야 하는 역설적 상황. 이 부조리극도 배신의 심리학으로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이한구 공관위원장을 임명한 사람은 사실 김무성 대표가 아닐 게다. 누구나 짐작하듯이 그는 청와대에서 보냈을 테고, 김 대표는 마지못해 그것을 수락했을 게다. 불출마를 선언한 한갓 낭인에 불과한 이한구 의원이 졸지에 당 대표를 면접장에 세울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당연히 청와대의 배경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대통령은 왜 그를 내려 보냈을까? 물론 김 대표를 비롯한 '비박계'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기 덕에 당선된 이들이 감히 은혜를 배신했다는 것이다.

이 독특한 심리 기제는 인식론적 문제를 윤리학적 문제로 둔갑시키게 된다. 이견이 곧 배신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원내대표를 날려버리는 황당한 사태도 그렇게 발생했다.

웃지 못할 '진박' 경쟁도 실은 "진실한 사람"이라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만들어낸 희극이다. 배신의 심리학에 지배당하는 이에게 좋은 정치인의 기준은 지성도, 격조도, 전문성도, 도덕성도 아니다. 그에게 좋은 정치인이란 단 하나, 진실한 사람, 즉 자신을 배신하지 않고 자신에게 끝까지 충성할 사람이다.

나라 안을 정복한 배신의 심리학이 이제 나라 밖으로 확장되고 있다. 개성공단 사태를 보자. 국회연설에서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정책기조를 표방했고, 2014년 3월에는 드레스덴 선언을 발표"했지만, 이러한 정부의 노력에 "북한은 핵과 미사일로 대답"해 왔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북이 나를 배신했다는 얘기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나 '드레스덴 선언'은 별 의미 없는 공염불일 뿐이다. 북한을 위해 국제기구에서 382억원, 민간단체에서 32억원을 지원했다고 하는데, '객관적으로' 보자면 이건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라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배신감을 토로하는 것을 보니 '주관적으로는' 북한을 무척 생각해 주셨던 모양이다.

사드 배치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했을 때 대통령은 담화에서 "힘들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말하며 중국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한 바 있다. '친구'라는 말은 아마도 미국의 심기를 거슬러가며 중국의 열병식에 참가해 시진핑 주석으로부터 '라오펑요우'(老朋友)라는 칭호를 들었던 것을 염두에 둔 것이리라.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열병식에 참여한 것이 주관적으로 큰 성의를 보인 것이라 믿는 모양이다. 사실 미군 장군 업어주고 미국 대사 쾌유하라고 부채춤을 춰대는 나라에서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열병식 참가는 '객관적으로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그 정도로 중국이라는 대국의 국가전략을 바꿔놓을 수 있겠는가?

상식적으로 사드의 배치는 중국의 대북 제재 참여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 아니라, 그것이 확정적으로 좌절된 시점에나 생각해 볼 수 있는 카드다. 그런 카드를 미리 던져버린 것은 결코 합리적 판단이 아니다.

이 부조리 역시 배신의 심리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나를 '오랜 친구'라 불렀던 중국이 나를 배신했다는 것이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은 우리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히고, 사드 배치 역시 미국의 MD에 편입하여 스스로 국익을 해치는 자해적 조치라는 점에서, 이들 결정은 매우 즉흥적이고 충동적으로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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