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전 제58회 사법시험 1차 시험이 치러진 서울 서초고 앞. 시험장에 들어서는 수험생들의 표정은 비장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함도 묻어났다.
오전 8시 개방된 시험실은 시간이 지나며 수험생들로 속속 채워졌다. 입실은 오전 9시 25분 완료됐고 10시에 시작 종과 함께 1교시 과목인 헌법과 선택과목의 시험지가 배포됐다.
1차 시험은 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 등 전국 11개 시험장에서 일제히 치러졌다.
한 수험생은 "사시 존폐와 관계 없이 오늘이 사실상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시험을 봤다. 다른 고시생들도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며 "시험 결과가 나오면 향후 진로를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이번 시험은 현행법이 허락한 마지막 시험이다. 사법시험법과 변호사시험법에 따라 2017년 사시가 폐지되기 때문이다. 사시 폐지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치열한 가운데 사시의 운명은 올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 오로지 실력으로 결정…'희망의 사다리' 사법시험
70년 역사의 사법시험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희망의 사다리'로 통했다.
'줄 없고 빽 없는' 서민의 자녀가 공정한 경쟁으로 법조인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통로였다. 지역·성별·학력의 차별 없이 오로지 필기시험 성적으로만 합격·불합격이 가려졌다. 재벌이나 법원장·검사장 자녀도 시험에 붙지 못하면 법조인이 될 수 없었다.
합격률이 낮다 보니 수년간 시험에 매달리는 '고시 낭인'을 양산하는 부작용도 없지 않았다. 사회 경험이 부족한 법조인을 배출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든 노력하면 원하는 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시의 강점이었다.
사법시험의 시초는 1947∼1949년 3년간 시행된 조선변호사시험이다. 이후 고등고시 사법과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1963년부터 '사법시험령' 제정과 함께 현재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초기 사시는 합격 정원이 정해져 있지 않은 절대평가제였다. 평균 60점 이상을 얻어 합격하면 전원 판·검사로 임용됐다. 당시는 사실상의 판·검사 임용시험으로 통했다. 하지만 합격자 수는 극히 적었다. 실제 1967년 합격자는 5명에 불과했다.
정원제를 도입한 것은 1970년부터다. 이후 매년 60∼80명의 법조인이 배출됐다. 1980년에는 합격자가 300명으로 늘었다.
1995년 사법개혁안으로 사법시험 선발인원의 단계적 증원이 이뤄졌다. 1996년 500명의 합격자를 배출한 이래 해마다 100명씩 늘었다. 2001년부터는 합격자 1천명 시대가 열렸다.
정원이 늘어나면서 임용시험의 기능보다는 변호사 자격시험의 성격이 두드러졌다. 합격자 가운데 일부만 판·검사로 임용되고, 대다수는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는 자격증을 획득했다.
◇ 미래 지향 '사법 개혁'의 결과물…로스쿨 시대
서울 신림동 학원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고시촌은 고시생들로 북적였다. 청운의 꿈을 품고 도전하는 수험생이 몰렸지만 합격 인원은 제한된 탓에 '장수생'이 늘어나 이른바 '고시 낭인'이 문제가 됐다. 법조인 부족으로 국민 접근성이 제한된다며 법률서비스 시장을 개선하자는 문제의식도 싹텄다.
미국식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과 사시 폐지 등을 포함한 사법제도 개혁 논의는 김영삼 정부 시절 태동했다.
사법제도발전위원회(1993년), 세계화추진위원회(1995년), 사법개혁추진위원회(1999년), 사법개혁위원회(2003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2005년) 등의 논의를 거쳐 노무현 정부 때 마침표를 찍었다.
1995년 2월 대통령 자문기구인 세계화추진위원회는 사법개혁에 착수했다. 대법원 및 법무부와 공동연구한 끝에 그해 12월 '법률서비스 및 법학교육의 세계화 방안'을 발표했다. 법조인 선발 확대, 사시 개선, 사법연수원 개편 등이 포함됐다.
로스쿨 도입도 논의됐지만 법조인 양성에 과도한 비용과 기간이 소요되고, 대학 전체가 고시학원화할 우려가 있으며 현재 실정상 불가능하다는 등의 이유로 채택되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도 로스쿨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로스쿨 도입은 노무현 정부 때 결정됐다. 다양한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가진 법조인의 공급 확대, 법조인 양성제도 개선 등을 바라는 사회 분위기에 맞물려 성사됐다.
2007년 7월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일명 로스쿨법)이 확정·공포됐고 2009년 로스쿨이 문을 열었다. 사시 정원은 2010년부터 단계적으로 줄여 2017년 전면 폐지하기로 했다.
◇ 유지냐 폐지냐…갈등 고조·존폐 논란 지속
사시 존폐를 둘러싼 논쟁은 이후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꾸준히 계속됐으나 합의점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개천에서 용 나는' 공정한 신분상승의 사다리로서 사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과 "시대적 사명을 다한 사시를 버리고 로스쿨로 법조인 양성 체계를 단일화하자"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이런 상황에서 로스쿨 입학 과정의 공정성을 둘러싼 '현대판 음서제' 논란이 불거졌다. 2014년에는 법원장, 검사장, 로펌 대표, 고위 공직자와 교수 30여명의 자녀 수십명이 로스쿨에 다니는 것으로 파악됐다. 평균 2천만원 안팎의 비싼 학비 탓에 '돈스쿨' 얘기도 나왔다.
지난해 말에는 법조인 양성제도를 관장하는 법무부가 "2021년까지 사시 폐지를 유예하자"는 의견을 내놓아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현재 국회에는 사시 존치 및 사시와 유사한 일본식 예비시험제 도입 등의 내용을 담은 사법시험법·변호사시험법 개정안이 여러 건 제출돼 법안 심사를 앞두고 있다.
사시 존폐 문제는 올해 국회에서 어떻게든 결론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 조만간 격렬한 논쟁이 다시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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