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영민의 에세이 산책] 육아 예능에는 육아가 없다

아이는 기분이 좋아 보인다. 오늘은 모처럼 집에 손님이 온다. 맛있는 음식이 준비되어 있고 아이스크림도 먹는다. 집에 온 손님이 낯설고 불편한 것도 잠시뿐이다. '손님의 존재'가 무료했던 저녁의 일상을, 엄마와 아빠를 완전히 바꿔 놓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내 아내는 가능한 한 손님에게 '좋은 아빠' '좋은 엄마'로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노력한다. 집 안 가득한 꽃내음과 은은한 조명은 손님을 위한 특별한 장치다. 분명 어제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집을 방문한 손님은 우리 집을 보더라도 본 것이라 할 수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우리 집의 일상이 아니다.

이런 내 경험에 비춰봤을 때 거실에 들어온 '카메라의 존재'는 아마도, 거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을 것이다. 우리는 카메라를 통해 그 연예인의 집을 들여다보고 있지만 어쩌면 아무것도 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정말 '꾸미지 않은 있는 그대로'를 보려면, 영화 에서 트루먼을 속이는 것처럼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숨겨야 한다. 그런데 육아 예능에 출연하는 아이들은 거실에 설치된 카메라를 발견하고는 다가가 뽀뽀까지 한다.

거실에 카메라가 설치된 날이면 잔소리 많은 엄마는 항상 어디론가 사라지고, 아빠는 슈퍼맨이 되어 돌아온다. 어찌 뽀뽀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카메라의 존재는 일상을 '비-일상'으로 만든다. 이제 연예인 아빠는 '슈퍼맨'을 연기해야 한다.

육아 예능에는 아이의 순수함, 아빠의 활기참, 세련된 육아만 나타날 뿐 아이의 야수성, 엄마의 고단함, 구질구질한 일상은 적당히 제거되어 있다. 육아 예능에서 육아는 여행을 가거나 맛집을 찾아다니는 놀이처럼 비치지만, 보통의 엄마들에게 육아는 고단한 매일의 노동이다. "아빠 어디가", 이 물음은 육아 예능에 나오는 연예인 아빠에게는 "아빠 어디가? 오늘은 우리 어디로 여행갈까?"를 의미하는 것이겠지만, 회사일로 분주하고 주말에도 가게 문을 닫을 수 없는 보통의 아빠들에게는 "아빠 어디가? 오늘도 또 일하러 가?"에 더 가까운 의미일 것이다.

TV만 켜면 나오는 육아 예능은 어쩌면 육아보다는 육아를 잘 연출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건 육아 예능뿐만이 아니다. 장모와 연예인 사위가 옥신각신하는 프로그램에서는 시부모와 며느리 사이의 불평등한 권력관계는 은폐되고. 연예인이 군사훈련을 받는 군대 예능에서는 상처투성이인 군대에서의 생활은 드러나지 않는다.

리얼 버라이어티에는 리얼이 없고, 육아 예능에는 '예능'은 있지만 육아는 없다. 현실은 싸움으로 가득 차 있고 평화는 예능 속에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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