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양희창의 에세이 산책] 글쓰기를 놀기처럼

"댓글은 잘 달면서 주제를 갖고 한번 써 보라고 하면 왜 갑자기 침묵 수련으로 들어가는 거니?" "글 쓰는 게 너무 어려워요. 도대체 뭐부터 써야 할지, 문장 하나 만드는 게 고역이에요." "먼저 생각을 해야지. 잘 쓰려고 하지 마,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데 집중해." 중학생의 고민을 듣고 있는 게 아니다. 이십 대 청년과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그 어려운 논술도 준비하고 초'중'고등학교까지 십이 년 공부를 했건만 짧은 문장 하나를 만들 수 없다니, 하긴 시를 직접 써 보기보다는 분석해야 하고, 소설을 읽으며 인생을 논하기보다는 문제집만 파고들었으니 상상력의 부재, 생각하는 힘을 오랫동안 서서히 거세당한 꼴이다.

"홍시야, 너도 한때 무척 떫었었지? 딱 한 문장인데 느낌이 오지 않니? 내가 쓴 게 아니라 하이쿠라는 일본의 짧은 시인데 평범한 시민들이 자신의 감정을 생활 속에서 진솔하게 드러낸 거야. 근데 청소년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쉽게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아냈어. 그게 뭔 줄 알아? 랩 가사를 써 보는 거야. 다들 랩 좋아하잖아, 자신이 래퍼가 되어 일상을 표현해 보는 거지."

"놀면서, 흥얼거리는 걸 글로 옮긴다는 거죠? 길게 쓰는 건 못 해도 짧은 말을 글로 옮기는 건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지금 창밖에 굵직하게 비가 내리고 있어. 랩 한번 읊어 봐." "음, 나는 창가에 앉아 세상을 바라본다. 빗방울이 취직도 못 한 나를 마구 때린다."

"하하, 너무 자조적이다. 그래도 글쓰기가 놀기만큼 쉬워질 때까지 가까이해 봐, 개미를 쓴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글 쓰려고 앉으면 마치 수도꼭지 튼 것처럼 글이 마구 쏟아져 나온대. 천재라서 그런 게 아니라 오랫동안 글과 친하게 지내와서 그렇겠지."

"해산의 고통처럼 힘들게 글을 쓰는 분들도 있지 않나요? 글 쓰는 작업이 과연 쉬운 일일까요?" "맞아, 하지만 글 쓰는 걸 놀기처럼 하라는 건 자신의 생활 속에 녹여 보라는 거지. 노는 것도 쉬운 거 아니잖아,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는 연습을 해 보자는 거야."

"아, 그러니까 생각났다. 이전에 샘이 랩을 느릿느릿 창으로 불러 주신 적이 있어요. 거꾸로 세상 보면 문제가 답이다. 거꾸로 세상 보면 아픔이 희망이다." "아니, 그걸 기억하고 있다니, 고마워. 이젠 래퍼는 아니어도 창과 랩 사이에서 놀고 있어. 놀다가 생각나면 글로, 글 쓰다 안 되면 놀러, 놀러, 놀러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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