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신공항방성대곡

영남권 신공항이 5년 만에 또다시 없던 일이 됐다. 그렇게 뜸을 들이더니만 백지화란다. 대신 불가능하다는 김해공항 확장안을 들고 나왔다. 가덕도와 밀양 둘 중에 우열을 가리는 용역이라더니 엉뚱한 소리를 한다.

밀양이 안 됐다고 흥분하는 건 아니다. 섭섭함이야 없을 수 없지만 누구처럼 밀양이 안 되면 민란이라도 일으킨다는 것도 아니다. 어디가 되든 승복해야 한다고 한 말이 있으니 한 입으로 두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정부는 가덕도 아니면 밀양 가운데 결정을 한다고 여러 차례 대국민 약속을 했다. 그런데 백주 대낮에 보란 듯이 이 약속을 어겼다. 결과적으로 대국민 사기극을 벌인 것이다. 박근혜정부도 5년 전 신공항 백지화로 국민들을 실망시켰던 이명박정부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더 나빴다. 5년 전에는 경제성이 없다는 핑계라도 있었지, 이번에는 그럴싸한 구실도 없다. 이럴 걸 장장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허비하게 했다니 기가 막히다. 5년에 다시 5년 오매불망 신공항만 기다려온 사람들을 우롱하고 농락해도 유분수지.

밀양에 온다고 박수를 준비했던 사람들도, 가덕도라면 규탄대회라도 열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던 사람들도 김이 팍 샜다. 허탈 그 자체다.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본다고 했지만 신공항이 날아가 버린 남쪽 하늘만 쳐다보는 신세다.

되지도 않을 일을, 아니 주지도 않을 선물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목 빠지게 기대하고 기다린 우리 잘못이지,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서울에만 사람이 살고 지방에는 촌놈만 산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이들이 정책 결정을 좌우하는 자리에 있음을 몰랐던 우리의 순진함을 탓할 따름이다. 그들의 사전에 지방은 없었다. 밀양도 가덕도도 없었다. 문제 해결 능력도 의지도 없는 정부라는 걸 진작에 알아차리고 김칫국을 마시지 말았어야 했다.

능력이라도 없으면 정직하기라도 해야지. 거기에다 비겁함까지 더한 정부였음을 이제야 알았다. 후회막급이다. 오로지 오른손에 쥔 떡도 먹고 싶고 왼손에 든 떡도 놓치기 싫다는 정치적 욕심만 가득 찬 결정에 열이 차오른다. 표 계산만 할 줄 알았지 국익이나 미래는 안중에 없었던 것 같다.

이런 결론을 내릴 것이었다면 일이 이렇게 커지도록 방치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진작에 했으면 헛심이라도 덜 쓰고 진이라도 덜 빼지. 정부가 할 일이 그런 것 아닌가. 갈등이 있다면 당사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풀도록 해야 하고, 이견이 있다면 간극을 좁혀 접점을 찾아내도록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시간도 충분했다. 그런 걸 못 하거나 안 한다면 정부도 아니다. 또 결단을 내려야 할 때는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원칙주의자 대통령이 있는 이 정부는 다를 줄 알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지 못했다. 갈등과 증오를 덜어내지는 못할망정 증폭시키기만 했다.

대통령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지만 높으신 분들도 그 자리가 아깝다. 책임도 의무도 다하지 못하면 권력과 명예는 분에 넘칠 뿐이다. 이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10년 동안 신공항에 목을 맨 영남권 5개 시도를, 순진하게 기다렸던 남부권 2천만 국민들을 잠 못 들게 한 건 누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그동안 신공항에 쏟아부은 국민적 에너지가 얼마나 되는지 고민이나 해보았나? 밀양과 가덕도 두 진영의 골은 무엇으로 메울 것인가?

그렇다고 언제까지 신공항만 되뇌며 한숨을 쉴 수는 없다. 정부가 무능하고 무책임하면 우리라도 이를 깨물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신공항이 없어도 우리들은 여기서 살아야 한다. 이곳에도 내일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인천으로 가는 데 날 새야 하는 불편함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또 누가 아는가. (정상적인 나라라면 그런 일이야 없겠지만) 몇 년 뒤 다시 신공항 문제가 이슈로 부각될지. 그때는 또 어쩌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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