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해의 창] 신공항과 방폐장

정부의 신공항 억지(?)에 항의해 본지가 1면을 백지로 낸 뒤 경북 동해안에서 생활하는 부산 출신 지인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잉크가 부족하십니까?"라며 냉소 섞인 농담을 걸어왔다. 영남권 신공항이 공항의 위치만을 표시할 뿐 사실상 기능은 대한민국의 제2관문공항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점과 단순히 경상도뿐만 아니라 전라'충청권까지 하늘길을 활짝 여는 국책사업이라는 점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밀양이 어딥니까, 대구경북이 아닙니다"고 했다. "아 참, 밀양이 경남이지. 대구경북으로 순간적으로 착각했네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도 중앙정부와 수도권 언론들의 '밀양 신공항=TK 신공항'이라는 논리에 세뇌당한 셈이다.

정부는 밀양과 가덕도를 두고 결정한다고 해 놓고는 김해공항 확장안으로 신공항이라는 억지 주장을 펼쳤고 이에 정치인들이 나서 "아쉽지만 대승적 결정이었다"며 뒤를 받쳤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역 출신 정치인들이 황교안 총리를 만났지만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듯했다"는 표현이 상황을 대변한다.

신공항 억지가 나오기 나흘 전인 지난달 17일 언론에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지만, 서울에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방폐장과 관련된 공청회가 있었다. 여기에도 신공항 못지않은 정부의 일방통행이 도마에 올랐다.

이날 새벽잠을 설치며 상경한 경주'울진'영덕 등 경북 동해안 주민들과 부산'영광 등 주민들은 주최 측의 저지로 일부만 행사장에 진입해 행사장 단상을 점거한 채 구호를 외치고 그들의 주장을 펼쳤다. 이들과 동행한 권영길 경주시의회 의장은 "현재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이 기존 원전에 임시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에다 정부에서 임시저장고를 더 짓겠다고 하면서 해당 지역 주민들은 소외시킨 채 공청회를 연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정부는 임시저장고 추가 증설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겼다. 일체의 고준위 방폐장 논의는 중단돼야 한다"며 정부를 겨냥했다.

영덕의 한 주민은 "당신들이 촌사람들을 어디 인간 취급했느냐. 인간 취급 안 하니까 우리가 여기까지 와서 이러는 것 아니냐"며 목청을 높였다. 또 다른 영덕 주민은 "영덕 원전이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번에는 고준위 방폐장 논의에 영덕이 오르내리고 있다. 정부는 이렇게 일방적이어도 되는가?"라고 했다.

주민들의 반발 속에 공청회는 오전 11시쯤 휴회에 들어갔다가 낮 12시에 갑자기 재개가 선언되고 곧바로 폐회가 선언됐다. 이에 대해 주민'시민단체들은 "이번 공청회는 주민들을 배제한 채 날치기로 진행돼 무효"라고 주장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회의진행 방해 등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안건발표 등 소정의 절차 및 의견 개진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계획대로 완료됐다"는 공식입장을 내놨다. 정부는 "어쨌든 공청회를 마쳤다"며 주민들의 행동을 억지 또는 생떼'추태의 이미지로 덧칠했다.

신공항 백지화, 원전'고준위 방폐장 공청회를 보면서 정부의 일방통행이 매우 구체적이고 전략적이라고 표현한다면 너무 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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