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 'roll out the red carpet' 'give some red carpet treatment'라는 표현이 있다. 직역하면 '붉은 카펫을 깔다' '붉은 카펫으로 대접하다'로 '융숭히 환대한다'는 뜻이다. 외국의 국가원수나 그에 준하는 귀빈을 영접할 때 붉은 카펫을 까는 관행에서 나온 말이다. 이는 귀빈에게 맨땅을 밟게 하지 않겠다는 뜻도 있지만 붉은 카펫 자체가 '고귀' '신성' '권위' 등을 상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붉은 카펫이 이런 함의를 갖게 된 기원은 고대 그리스 극작가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아가멤논'이라고 한다. 이 작품에서 아르고스의 왕인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10년 만에 귀환하자 그의 아내는 붉은 천을 깔고 맞이했다. 하지만 아가멤논은 붉은색은 신의 색이기 때문에 그 위를 걷지 않겠다고 거부했다.
붉은색이 이처럼 귀한 대접을 받게 된 것은 비용의 문제도 작용했다. 신대륙에서 새 염료가 들어온 16세기 전까지 유럽에서 붉은색 염료는 푸른색보다 10배나 비쌌다고 한다. 붉은 염료를 만들려면 연지벌레(kermes)라는 곤충이 가진 천연물감이 필요했는데 이 곤충 155마리가 있어야 붉은색 염료 1g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붉은 카펫이 국가 주요 행사의 필수 의전 요소가 된 것은 나폴레옹의 대관식 때라는 설이 있다. 하지만 다비드의 그림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에는 붉은 카펫이 아니라 엷은 녹색 카펫이 깔린 것으로 보아 사실이 아닌 듯하다. 아마도 붉은 카펫의 권위를 확고히 하려고 나폴레옹을 갖다 붙인 것으로 보인다.
붉은 카펫이 '고귀' '신성' '권위'에 이어 '환대'의 뜻을 갖게 된 것은 20세기 들어서이다. 1902년 미국의 '뉴욕 센트럴 철도' 회사가 VIP 승객들이 탑승할 때 붉은 카펫을 깔아줬다. 여기서 'red carpet treatment'(융숭한 환대)라는 표현이 생겨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3일 G20 정상회의 참석차 중국 항저우를 방문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중국이 붉은 카펫이 깔린 의전용 계단을 제공하지 않아 외교 결례라는 비판을 받았다. 같은 날 도착한 박근혜 대통령 등 다른 나라 정상들에게는 붉은 카펫을 깔아줬음을 감안하면 이는 분명히 의도적이었다. 그런다고 중국이 원하는 대로 미국이 움직여주지도 않을 텐데 이미 외교 의전(儀典)으로 굳어진 붉은 카펫을 깔아주지 않는 그 '밴댕이 소갈딱지'가 한심스럽다. 그러면서도 대국(大國)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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