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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문의 한시 산책]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저 낙엽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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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천로 선생 영정.
차천로 선생 영정.

가을에 생각함

차천로

가을 산이 봄 산보다 못하다곤 못할 것이

털어내고 새로 낳고 한가할 틈이 없네

작년 돋은 푸른 잎이 나무 끝에 남았다면

올해 봄 붉은 꽃이 어찌 가지 위에 필까

春山非必勝秋山(춘산비필승추산)

擺落生成覺未閒(파락생성각미한)

舊綠如曾留木末(구록여증류목말)

新紅安可着枝間(신홍안가착지간)

*원제: 秋懷(추회)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이 사신으로 중국에 갔다가 아주 용하다는 점쟁이를 만났다. 그 점쟁이는 하늘의 별을 살펴본 뒤에 허균에게 대뜸 이렇게 말했다. "동방의 한 문호(文豪)가 곧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거요." 그 한마디 말에 허균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아, 내가 이제 죽게 되는구나." 그런데 압록강을 건너자 오산(五山) 차천로(車天輅'1556~1615)가 세상을 떠났다는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허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대신에 깜짝 놀라서 망연자실했다고 한다. 문인으로서 자의식이 아주 강했던 그는 하늘의 평가에 대해 근본적인 이의를 제기하며 분통을 터뜨렸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가만, 차천로가 도대체 누구시더라? 지금은 아는 이가 드물지만, 그는 앞에서 말한 전설 속에서 허균을 이긴 대시인이다. 위의 시는 바로 그 잊혀가는 빼어난 시인 차천로가 지은 작품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가을 산보다 천산만산에 꽃들이 폭죽을 퍽퍽 터뜨리고, 꽃 진 자리에 신록이 우지끈, 다 들고 일어나는 봄 산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지난여름의 그 무성하던 나뭇잎을 죄다 털어내고, 잎이 지는 그 순간부터 새로운 봄을 준비하고 있는 가을 산의 흥취와 역할도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뛰어내리는 것도 물론 엄청 무섭지만/ 더 이상 버티기에는 너무나도 팔이 아파/ 두 눈을 질끈 감고서 잡은 손을 놓았어요// 죽었다, 싶었는데 누가 받아 주더군요./ 이게 누구야 하고 살며시 눈을 뜨니,/ 아 글쎄 땅이더군요, 땅이 받아주더군요// 땅의 모가지를, 힘껏 껴안고서/ 엄마아~ 외치고선 긴긴 잠을 잤는데요,/ 아 나도 땅이더군요, 땅이 되어 있더군요." 되다가 만 졸시(拙詩) '낙엽'이다.

그렇다. 떨어질 때가 되면 떨어질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 낙엽이다. 물론 떨어지는 데는 엄청 공포가 뒤따르지만, 그러나 지나치게 걱정은 하지 마라. 떨어지고 나면 땅이 다 받아주게 되어 있다. 떨어진 낙엽들이 세월의 풍화작용과 함께 땅이 되어야, 내년 봄에 바로 그 땅의 힘으로 새로운 잎새들이 피어오른다. 시인의 말마따나 작년에 돋은 푸른 잎들이 악착같이 나무에 붙어 있다면, 올봄에 어떻게 붉은 꽃이 새로 필 수가 있겠는가.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낙엽들아, 이제 그만 결단을 내리고 미련 없이 훌훌 떨어지거라. 헌 세상이 가야 새 세상이 오고, 헌 나라가 가야 새 나라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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