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중권의 새論새評] 순실이파 조폭윤리

서울대(미학과 학사
서울대(미학과 학사'석사) 졸업.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전 중앙대 겸임교수

박근혜 사적 충성심으로 헌정 문란

장관'수석'당 대표 등으로 보답받아

촛불 민심은 정치'윤리적 책임 요구

대통령은 법 들고 와 거부하는 양상

국가가 조폭인가? 대통령이 차관과 수석을 보내 기업에서 '삥'을 뜯었다. 이 양아치 짓에 방해가 되는 이들에게는 철저한 보복을 가해 그들을 사퇴시키고, 좌천시키고, 해고시키고, 구속시켰다. 그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조폭의 필수품인 대포폰도 사용됐다.

청와대 대응 문건은 대통령에게 최순실, 미르'K스포츠재단과의 관련을 부인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이 역시 마피아나 야쿠자가 즐겨 사용하는 수법이다. 그 모든 범죄가 두목의 명령 없이 저질러질 수는 없을 것이나, 이 수법 덕분에 조폭의 보스는 웬만해서는 처벌받지 않는다. 감옥에 가는 것은 똘마니들이다.

똘마니들이라고 그냥 감옥에 가겠는가? 두목의 죄를 대신 뒤집어쓴 데에는 보상이 따른다. 이 어두운 세계의 미풍양속(?)을 그들은 '의리'라 부른다. 최순실의 말이다. "언니 옆에서 의리를 지키니까 이만큼 받잖아." 새누리당 대표의 말을 들어 보자. "나를 제값으로 대접해 준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이 사실상 유일하다." 이것이 조폭의 낭만이다.

그들에게 '공적' 윤리의식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가진 것은 박근혜라는 개인에 대한 사적 충성심뿐. 그 충성심은 금전과 권력으로 보답받는다. 어떤 이는 나라 곳간을 털어 치부를 했고, 다른 이들은 총리가 되고, 장관이 되고, 수석이 되고, 당 대표가 되었다. '공적 업무'(res publica)를 뜻하는 공화국은 이렇게 조폭 소굴이 되었다.

대통령은 "검찰의 수사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더니 변호인을 통해 자기에게는 검찰의 조사에 응하지 않을 특권이 있고, 조사에 응하더라도 서면조사로 족하며, 대면수사가 필요하다면 그 횟수는 최소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조사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대응 문건에는 아예 증거인멸을 지시한 흔적까지 나타난다.

물론 대통령도 자신을 법적으로 방어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어디 그저 사인이기만 한가? 공인 중에서도 최고의 공인인 그가 일반 형사사건의 잡범처럼 군다. 어떻게 하면 법의 빈틈을 통해 빠져나갈까 사인의 궁리만 있을 뿐, 헌정을 문란케 한 데 대한 정치적-윤리적 책임을 지겠다는 공인의 의지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야쿠자의 도덕은 '법=윤리'라는 것이다. 그들은 법망에만 안 걸리면 그 어떤 범죄도 윤리적으로 허용된다고 본다. 일국의 대통령 윤리의식이 딱 그 수준이다. '진실한 사람들'의 수준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의 친박은 대통령에게 윤리적 책임은 물론이고, 아예 탄핵의 형태로 법적 책임을 묻는 데에도 반대한다.

비박이라고 다른가? 입으로는 탄핵을 얘기하나 대통령이 하야라는 형태로 윤리적-정치적 책임을 지는 데에는 극구 반대한다. 그들이 하는 탄핵 얘기도 그저 당권을 장악하기 위해 대통령을 압박하는 제스처일 뿐, 그들이 대통령에게 진짜로 법적 책임을 지우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어 보인다.

대통령과 청와대의 태도는 정치적-윤리적 책임은 죽어도 못 지겠으니 어디 한번 법대로 해보라는 것이다. 법은 최후의 수단이다. 법적 책임은 대통령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관계없이 당연히 져야 하는 강제적 책임이고, 대통령이 제 의지에 따라 자발적으로 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정치적-윤리적 책임뿐이다.

광화문에 모인 100만 촛불 시민의 요구는 대통령이 법적 책임 이전에 먼저 공인으로서 정치적-윤리적 책임을 지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뇌 밀도 희박한 대통령을 위해 책임지는 방식까지 가르쳐 줬다. '하야하라.' 하지만 죽어도 책임을 못 지겠단다. 그러니 윤리 따위가 아니라 법을 들고 와 내 배를 째라신다.

국민이 맡긴 권력을 흔쾌히 무당의 딸에게 내준 이가, 그 권력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만은 죽어도 못 하겠단다. 하야에도 최순실의 '컨펌'이 필요한 걸까? 그러니 다음 시위는 광화문이 아니라 서울구치소 앞에서 해야 할 판이다. 최순실 같은 진상 고객이 있다는 건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대통령에게도 진상이 있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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